역사스페셜100선

55 <밀레니엄특집> 대고구려 제4편 - 고구려인의 재산 목록 1호는 수레였다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9:07

<밀레니엄특집> 대고구려 제4편 - 고구려인의 재산 목록 1호는 수레였다 
<대 고구려>시리즈의 마지막 편. 평양 근처에 있는 고구려의 무덤 덕흥리 고분에는 주인공의 화려했던 생전모습이 그림으로 나와있다. 그 중에는 무사들을 거느린 채 아름답게 장식한 수레를 타고 행차하는 장면이 있다. 고구려의 수레에는 대륙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었던 고구려인들의 저력이 담겨 있었다. 
1. 무덤구조는 주인공 생전의 가옥구조와 같다
덕흥리 고분의 구조와 벽화를 보면 고구려의 귀족 진이 살았던 살림집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낼 수 있다. 붉은 빛이 도는 지붕은 화려하고 강렬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잘 꾸며진 앞마당을 지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바깥 일을 보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보인다.
2. 고구려인들은 半입식, 半온돌 생활을 했다.
고구려 사람들은 조선시대 사람들과 달리 좌식 생활이 아니라 입식 생활을 더 선호했다.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녔고 좌상이나 평상에 앉을 때도 신발을 바로 앞에 놓아 언제라도 나갈 수 있는 태세를 갖췄다. 온돌은 지금의 온돌과는 다른 구조였고 외고래 구들이었다.
3. 아비의 부엌
안악 3호분에는 고구려 저택의 부엌 모습이 자세하게 남아있다. 부엌에는 세 여인이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은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고, 다른 여인은 부뚜막에 놓인 시루에 음식을 하고 있다. 시루를 사용하는 고구려의 부엌에서 고구려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었을까?
4. 애교머리 장안을 휩쓸다.
수산리 벽화의 한 귀부인은 한껏 치장을 하고 남편과 함께 나들이를 나선 모양이다. 이 귀부인은 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빗었다. 감신총 벽에 그려진 여인은 머리를 고리모양으로 틀어 올렸다. 이처럼 고구려 사람들은 남녀노소에 따라, 또는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머리를 꾸몄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 있었다.
5. 고구려인의 자가용 – 수레
고구려에는 사람이 타는 수레와 짐을 싣는 수레가 따로 있었고, 수레의 모양도 다양했다. 쌍용총의 한 화려한 수레는 우람하고 잘 생긴 소가 끌고 있는데, 이 수레를 자세히 보면 바퀴가 다른 수레에 비해 상당히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승차감이 뛰어난 수레이다.
6. 수레바퀴의 비밀
무용총에 그려진 수레는 무거운 짐을 나르는 용도의 수레인데 바퀴가 무척 크고 얇다. 언뜻 보기에는 바퀴가 너무 약해 무거운 짐을 싣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수레바퀴에 비밀이 숨어있었다. 이 수레바퀴의 제작은 당시 최고의 하이테크 산업으로, 고구려가 대제국으로 도약하는 밑받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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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스페셜 제 55회 - 고 구려인 재산 목록1호는 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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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지만, 고분벽화에 나타난 것을 토대로 그들의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은 옷차림과 머리모양이 화려하며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그림 속의 서민들 또한 단정하고 나름의 멋을 부린 차림새이며 그들이 외출 시 주로 이용했던 수레는 생활이 비교적 여유로웠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1. 고구려벽화의 수레는 자동차였다?
 

  평양 부근의 고구려 덕흥리 고분의 주인공은 살아있던 당시의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있다. 무덤의 한 벽면에는 주인공의 신분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진으로 유주자사란 벼슬을 지냈으며 광개토대왕 시절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다.
벽화에 남겨진 다양한 진의 모습 중에는 수레를 타고 행차하는 장면이 있는데, 화려하게 장식된 수레를 타고 외출하는 당당한 모습은 그 당시 고구려 귀족의 모습니다. 덕흥리 고분의 행렬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말을 탄 사람, 손에 창을 든 무사, 중앙의 귀족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수레의 모양을 자세히 보면 규모와 화려함이 대단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한 고구려의 수레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이 비교적 넉넉하고 여유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구려의 수레는 현대로 치자면 자동차에 비교 할 만큼 고구려인들의 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2.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생활

 

  덕흥리 고분의 수레를 타고 있는 주인공이 어떻게 살았는지 벽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먼저 덕흥리 고분의 입구부터 살펴보도록 한다. 고분입구에는 벽화가 그려진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심하게 훼손되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지만 대부분의 고분입구에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수문장의 그림이 있듯이 수문장의 자리에 생전의 대문간 옆 사랑채에서 생활하는 시종들의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벽화 속 지붕의 기와를 통해 그들의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데, 흔히 사용되는 기와가 검은색인 반면에 고구려에서 사용되는 기와는 붉은 빛을 띠는 것은 고구려인들이 붉은색에서 풍기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벽화에는 붉은 기와를 사용한 지붕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나타낸다. 당시 고구려 귀족들이 살던 주택을 비교적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벽화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고구려인의 주거형태
 
 
3. 고구려인은 입식생활을 했다?
 

  덕흥리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주거형태를 유추할 수 있지만 그들의 실내생활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자세히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고구려인들의 실내생활은 어떠했을까? 안악3호분 벽화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의 왼쪽에는 평상에 앉아있는 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안 남포시에 있는 쌍영총의 벽화에서도 같은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부부가 나란히 앉아있는 평상 앞에 부부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이것은 이들의 실내생활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 고구려시대의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좌식생활보다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있는 입식생활을 선호하였던 것이다.
 


4. 고구려인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
 

  고구려인 생활의 풍요로움은 이들의 차림새에서도 잘 나타난다. 수산리 벽화에 그려진 어느 여인의 초상을 보면 한껏 치장을 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며 소매가 넓고 깃과 소매 끝에 선을 댄, 굉장히 화려한 색동치마를 입은 옷차림이다. 또 다른 그림의 예복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보면, 머리는 고리모양으로 틀어 올리고 붉은 빛의 넓은 자락이 드리워진 멋스러운 차림새이다. 이처럼 다양한 고구려인의 차림새는 귀족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무용총 벽화의 시녀복장을 살펴보면 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들도 나름대로 깔끔하고 단정하게 잘 꾸미고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인의 다양한 차림새는 머리모양에서도 잘 나타난다. 벽화에 그려진 남녀노소 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금속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구부리는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5. 고구려의 가정은 1가구 1수레였다?

 

  고구려인들은 머리모양 하나에도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멋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한껏 멋을 낸 고구려인들이 외출 할 때의 필수품은 바로 수레였다. 이때의 수레는 지금의 자동차에 비교할 수 있는데, 수레가 그들의 생활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는 벽화에 나타난 수레의 숫자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95기의 고분 중 총 18기의 고분 속 벽화에서 40여대의 수레와 4개의 수레바퀴 그림을 찾을 수 있다. 안악3호분에 그려진 차고의 모습에는 두 대의 수레그림이 있는데, 차고에는 지붕까지 얹어져 있다. 다른 벽화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고구려인들이 1가구 1차고였던 것의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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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의 재산목록 1호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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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많이 그려져 있는 어둡게

 나타난 실제 벽화의 그림을 컴퓨터로 재구성하여

 나타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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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고분의 수레  3대 ;  
두 대는 선명하나 맨 뒤에 위치한 수레는 희미하여

형체가 잘 나타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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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의 행차 장면 (수레를 타고 감)
-->밝게 나타난 원안의 벽화를 컴퓨터로 재구성하여

 방영한 것을  캡춰한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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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여인 머리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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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여인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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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여인 머리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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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여인 머리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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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만드는 여자와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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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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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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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벽화--접객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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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적을 먹을 때 쓰이는 칼 (원안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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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사냥그림

맥적은 통구이로 칼을 들고 쪼개 먹었다<석명>
오늘 날의 바베큐 방법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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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