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반도, 고인돌왕국의 수수께끼
한반도, 고인돌왕국의 수수께끼 |
고인돌은 큰 돌을 작은 돌이 고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즉 한반도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무덤 양식이다.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가 우리나라에 분포되어 있다. 왜 이 시대의 무덤이 한반도에 유난히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 |
1. 고인돌은 족장만의 무덤은 아니었다. |
매산 마을의 산기슭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고인돌들 중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모양새는 없다. 우리는 흔히 고인돌은 권력을 가진 자, 즉 족장의 무덤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지역에 있는 수백기의 고인돌이 모두 족장의 무덤인가 하는 점이다. |
2. 30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 |
고인돌은 그 모양에 따라 시신을 묻는 방식이 아주 달랐다. 그만큼 3000년 전 이 땅엔 다양한 매장풍습과 문화가 존재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는 제천 황석리의 유골을 가지고 30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 생김새를 복원해 보았다. |
3. 매산 마을 |
매산 마을의 고인돌군을 내려다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모든 고인돌들이 일제히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고창 매산 마을의 고인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매산 마을에는 이처럼 많은 고인돌이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
4. 덮개돌과 받침돌 |
주거형태만 다를 뿐 3000년 전 매산 마을은 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지금의 매산 마을과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곳 매산 마을의 고인돌 무덤군에는 덮개돌의 무게만도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고인돌이 있다. 이 거대한 덮개돌과 받침돌은 어디에서 구했으며, 어떻게 잘랐을까? |
5. 고인돌 축조과정 |
제작진은 고창군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고인돌 축조과정을 재연해 보았다. 고인돌을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고인돌에 쓸 돌을 구해야 했다. 덮개돌은 받침돌 위에 안정감 있게 올려져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평평한 것을 골랐다. 문제는 돌을 옮기는 것이었다. 9.8톤의 중량을 들 수 있는 현대식 장비인 포크레인을 이용했는데도 돌을 들어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중기도 없던 당시에는 무엇을 이용했을까. |
6. 돌에 대한 믿음 |
마을에 장례가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되어 고인돌을 축조했다. 왜 이들은 이렇게 힘겹게 거대한 돌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든 것일까. 고인돌 중에는 무덤이 아니라 특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 시신을 묻었던 것으로 보이는 무덤방이 없는 고인돌인데, 이 고인돌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기원을 하던 제단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무덤으로 쓰인 고인돌에도 이런 신앙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
7. 한반도는 세계 고인돌문화의 중심지이다 |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의 유럽 일부지역과 지중해연안에서 나타나며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요녕성 지역과 일본의 큐슈 지방에 일부 나타나고, 우리나라 전역에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 그 고인돌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한반도이다. |
고인돌은 정말 족장의 무덤이 맞을까? 그것은 <한반도 고인돌 왕국의 수수께끼>를 보고나서 생겨진 의문점이다.
그것을 보면서 이때까지 배워오고 생각했던 '고인돌= 족장의 무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대구나 다른 어느 지역에, 무덤의 주인이 여자라고 밝혀진 고인돌이 몇개나 발굴 되는 것에 의문점을 갖게 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고인돌의 숫자가 더 의심스러웠다. 더구나 한 마을에 400개가 넘은 숫자의 고인돌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서 고인돌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면 난 그것을 바위로만 보았을 것이다. 고인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고인돌의 형태를 알고 있으면서 자주 착각하는 편이다. 북방식은 쉽게 알 수 있겠는데. 남방식은 정말 바위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나만 그런 것이지 모르겠다. 거기서 예를 들어준 곳, 고창군 매산마을의 고인돌은 제각기 모양이 다르니까 더 혼동이 된다. 하긴 사람이 똑같은 고인돌을 만들 수는 없는 법.
비디오를 계속 보니 이것도 고인돌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듯 반듯하게 잘라놓은 덮개돌. 설령 자연의 힘이라 하더라도 자르는 흔적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뒷산에는 채석장이 나왔다고 하니 사람의 행동이란 것이 밝혀 졌으리라.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높은 산에서 큰 바위를 캐어내서 아래로 조심 스럽게 내려 보냈는지. 그 자리에서 던져서 내렸다면 분명 손상이 많이 되었을 것인데... 고인돌을 만드는 모습은 TV에서 가끔 보여주지만 나는 아직도 의문을 버릴 수 없다. 정말 어떻게 해서 그 큰 덮개돌을 운반하고 시신 위로 올렸는지. 사실 이런 의문은 북방식 고인돌에 더 크게 느껴진다. 세워져있는 바위 위에 어떻게 큰 덮개돌을 올렸는지. 그 때는 기중기도 없었을텐데...
고인돌이란 것이 난 매우 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 때까지 족장의 무덤이라고 배워왔으니 더욱 더 그런 생각을 갖게 했었다. 그런데 흔하디 흔한게 고인돌이었다. 요즘은 조금 크면서 평평한 바위를 이것도 고인돌이 아닐까 의심을 해 본다. 그런 바위들이 우리 학교에 조금 많이 보여서 이것도 고인돌, 저것도 고인돌? 이라고 머릿속에 의문이 생긴다.
처음에 언급했던, 고인돌은 족장의 무덤이 정말로 맞을까 라는 의문에 그 비디오에서는 자세히 설명 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고인돌, 아이의 고인돌.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고인돌을 보아하니 꼭 현재의 공동묘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도 (비디오에서도) 어쩌면 이 고인돌은 마을의 공동묘지가 아닐까 라고 했다. 아무리 족장이 많이 나왔다고 해도 400개의 고인돌의 주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짧은 생각이지만 고인돌로 사람의 특징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덮개돌로 봐서 작은 것은 키가 작은 사람이거나 어린 아이 같은 것이고 좀 큰 사람은 키가 큰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족장의 무덤이라고 크게 써 붙이지 않은 이상 족장도 사람이니 사람의 체형에 맞춰서 고인돌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때 그 족장이 엄청난 일을 했다면 그것을 기리기 위해 크게 만들던가 하겠지만, 그냥 평범한 족장이라면 그렇지는 않을 거란게 비디오를 보면서 느낀 내 생각이다. 큰 고인돌에는 족장을 상징하는 유물이 나오지 않고 그보다 상대적으로 조금 작은 고인돌에서 족장을 상징하는 유물이 나온다면 내 생각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비디오를 보면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고인돌은 절대 족장의 무덤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현재 내 생각은 그렇다. 그리고 여자와 어린 아이들도 묻었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평등의 시대는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비록 그리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절대 잊지 못할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