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25 대원군이 만든 459장의 보물지도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8:47

대원군이 만든 459장의 보물지도 
약 130년 전 대원군의 지시로 제작된 459장의 팔도 군현지도. 규장각에 있는 이 459장의 컬러그림에는 경기도에서 북한, 제주도까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요즘의 그림으로 표현된 관광안내지도나 문화 지도처럼 보기도 쉽고 전국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 그림들은 개항전의 조선을 이해하는 블랙박스라고 불린다. 수많은 비밀들이 담겨있는 459장의 보물지도를 KBS 역사스페셜이 최초로 공개한다! 
1. 그림지도는 보물지도다
지도 속의 충청도 연산에는 아주 재미있는 사실이 표현되어 있다. 하천가에 둥근 모습으로 그려진 가마솥인데, 현재 충청도 개태사에 이 솥이 정말 있었다. 그것도 전각에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다. 또한 지도상에 그려진 가마솥의 크기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대원군의 지도에는 항아리 모양으로 그려진 태실이 눈에 띄는데, 크기를 달리해서 위계까지 나타내고 있다. 이 지도를 통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됐던 고려태실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2. 조선의 읍성
459장의 지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전라도 남원지도는 어느 지도보다도 담겨진 내용이 상세하고 풍부해서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이 지도가 얼마나 산수화와 비슷한지, 지도 속의 건물들이 빠지면 산수화가 되고, 다시 건물들이 들어가면 지도가 될 정도이다. 따라서 읍성들이 산수화인지 그림지도인지를 구별해 주는 부분인데, 지도 속의 읍성은 활짝 핀 꽃의 꽃술처럼 중앙에 크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 꽃술 속에 조선읍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숨어있었다.
3. 광한루 동림(東林)
춘향의 정절과 함께 남원의 상징인 광한루 옆에는 울창한 숲이 보이는데, 동쪽에 있는 숲, 동림(東林)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그리고 이 숲의 나무들은 줄기와 가지까지 아주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광한루의 동림은 버드나무를 심어 인공적으로 숲을 만든 것인데, 이 버드나무에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담겨있다. 지금도 광한루 주변에서는 동림교라는 다리와 동림곱창집등 동림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4. 지도에 최초로 나타난 시장
전국적으로 이름났던 5일장의 역사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시장의 발달은 도로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도 속에는 시골 구석구석 존재했던 시장의 모습과 연결 도로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게다가 도로의 거리까지도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시장이 이렇게 지도에 표시된 것은 처음인데, 지도에 이런 것들이 나타날 정도로 변화된 경제 상황과 민의 성장을 알 수 있다.
5. 그림지도는 국방지도였다.
그림지도가 제작되던 1872년의 조선은 위기에 처해 있었다. 무력으로 서구 세력들이 밀려왔고,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며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459장의 그림지도 곳곳에는 대원군의 국방강화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지도에 그려져 있고, 서양배들이 지나간 대부도 지도에는 육로와 해로, 각 섬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이양선이 지나간 자리’라는 설명도 있다. 그리고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도 지도에 그려져 있다. 또한 광양현, 함평지도에는 배들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 당시 조선 배들의 다양한 종류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남, 진도, 순천지도에는 거북선이 그려져 있어, 1872년에도 거북선이 중요한 전선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원군이 만든 459장의 보물지도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고 10여년이 지난후, 대원군은 전국의 지도를 만들었다.

그것도 459장이나 된다.

그림지도엔 개태사에 가마솥그림이 그려져있는것도 있다.

충남 대흥지도에는 왕실의 태무덤이 그려져있다. 그곳엔 영조와 현종등의

태무덤이 있으나 지도에 있는 고려의 태무덤은 보이지 않는다. 지도에 있는 곳은 현재

비석기단만 남아있다

 

충남 태안지도엔 운하를 판 표시가 있는데 지금도 운하의 흔적이 남아있다.

문헌으론 파악할수없는 역사의 기록들을 그림지도 1장이 담고 있었다.

전라도 남원지도는 그 중 가장 화려하다. 그림지도엔 읍성이 가운데 중심부분에 크게

그려져있다. 이것은 읍성이 주민들의 편리에 따라 축조된것을 알수있다. 또 읍성엔 인공림이나

주변경치를 아름답게하는 기능도 있었다. 그외 어족자원을 보호하거나 군사기능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림지도는 조상들의 과학적인 환경의식도 보여준다.

 

또 사당을 통해 조선후기엔 민간신앙이 널리 보급됬음을 알수있다. 또 시장도 그려져있는데

조선후기 경제적인 면도 알수있다. 시장의 발달로 여객인 '점'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점은 민간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19c초 시장은 물품교환 뿐 아니라 백성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불만을 호소하는 토론의 장이 되기도했다. 지도엔 해양지도도 있는데 수심이나

섬등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것은 당시 서양세력이 밀려오던 시기에 대원군의 해양방어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것이다., 그림지도엔 거북선이 그려져있다, 거북선은 1890년까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군사기지엔 포수청이 많이 그려져있는데 화포가 일반화되었음을 알수있다.

대원군은 군비증강에 노력을 많이 했다.

459장의 그림지도엔 대원군과 당시 사람들의 위기의식과 국방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들어있다.

또 오늘날 문헌이나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복구하는데 도움이 되며

선조들의 삶이 묻어있다. 그림지도는 그들의 희망이 닮겨있는 소중한 보물 지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