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추적, 환단고기 열풍
추적, 환단고기 열풍 |
최근 한반도 상고사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환단고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 책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있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단군조선 이전에 이미 5천년의 역사가 더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당시 우리민족의 활동영역이 아시아를 넘어 시베리아 중앙고원, 바이칼 호수에 놀라운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
1.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
환단고기는 환인과 환웅의 역사를 기록한「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있는「단군세기」, 고구려의 전신인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북부여기」, 상고시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가 담겨있는「태백일사」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우리민족의 역사가 5천년이 아니라 일만년에 달하고, 4천년 전에 이미 문자를 사용한 인류최초의 문명국가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
2. 환단고기 열풍 현상 |
최근 환단고기에 대한 PC통신 동호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대학마다 상고사 동아리가 생기고 있다. 서점가에서도 환단고기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책의 서문에 따르면 1911년 계연수라는 사람이 4권의 책을 묶어 단행본으로 편찬한 것으로 써있는데 현재 이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
3. 환단고기는 어떻게 세상에 전해졌는가 |
계연수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서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이기, 홍범도, 오동진 등 모두 독립 운동가들이자 대종교와 관계 있는 인물로서 계연수도 이 부류에 속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가 실제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9년,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의해서다. 이런 미스터리한 내력때문에 이 책의 편자는 계연수가 아닌 이유립이라는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
4. 사료로서의 가치 |
환단고기는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에서 사료로서 인정할 부분이 많다. 삼국유사가 단군의 수명을 1908세라고 하는데 비해 환단고기는 단군을 ‘호칭’으로 보고 실제로는 47명의 단군이 있었다는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린다. 또 고조선의 주요 유물인 비파형동검이 만주,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점은 이 책이 서술한 고조선의 영역과 일치하고 있다. |
5. 사료로서 인정할 수 없는 근거 |
학계 전반에서는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사실 외 여러가지 이유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선, '산업','문화','전세계’남녀평등’과 같은 현대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 <한국통사>외 다른 책을 베낀 흔적이 있다는 점, 단군조선의 인구가 9억이라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사항이 많다는 것들이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도 이 책을 사료로서 인정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
6. 단군 논쟁 - 신화인가, 역사인가1 |
현재 단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은 매우 혼란한 상태다. 그것은 조선시대까지 뚜렷한 역사적 실존인물로 인식되었던 단군이 일제시대에 상고사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신화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잃어버린 상고사를 회복하고, 신화로 머물러 있는 단군을 역사로 받아들이려는 운동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
7. 환단고기 열풍 어떻게 볼 것인가 |
상고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단군은 역사와 신화 사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환단고기에 열광하는 것은 상고사에 대한 연 |
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타난 역사적 갈증이기도 하다. 어쩌면 환단고기의 연구는 상고사에 대한 대장정의 출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추적, 환단고기 열풍
환단고기는 4권의 책으로 이뤄져있다. 환인과 환웅의 이야기를 기록한 삼성기,
단군조선의 역사가 담겨있는 단군세기 , 고구려의 전신이 북부여의 역사를 기록한 북부여기 ,
상고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역사가 담긴 태백일사. 이렇듯 환단고기는 우리 상고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 환단고기의 내용은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아닌 일만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단군조선이 있기전에
5천년의 역사가 더 있다고 주장한다. 최초로 환국이 있었고, 환국에 뒤를 이어
신시라 불리는 배달국이 있었고 그후 단군조선 -> 북부여 -> 고구려 -> 발해 ->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를 기록하고있다.
특히 상고시대가 찬란하다. 최초의 국가 환국은 3301년동안 7명의 환인이 통치했다고 한다.
그 후 신시배달국은 18명의 환웅이 1500년 동안
다스렸다고한다. 환국과 신시배달국이 5천년 정도를 지배한후 마침내 단군조선이
탄생하는데 47명의 단군이 다스렸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기엔 환국의 영토가 남북 5만리 , 동서 2만리라고 기록하고있다.
또 환국은 12개의 나라를 거느렸다고 한다. 그 중 수밀이국이 있는데 일부에선 이 수밀이국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인으로 보고 그들을 우리 민족이라고 보고 있다 .
또 환단고기엔 배달국의 14대환웅인 치우천황을 전쟁의 신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치우천황과
맞썼던 중국역시 우리 민족이 시조라고 적고있다.
중국의 시조인 태호복회를 환웅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는것이다.
이렇듯 환단고기엔 우리 민족이 아시아 대륙을
지배한 눈부신 민족으로 기록하고 있다.
< 환단고기에 기록된 가림토문자>
또 환단고기엔 한글과 흡사한 가림토문자가
이미 4천년 전에 사용됬다고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가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은 세계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민족이자 최초의 문명이 되는것이다
< 삼성기 上권 - 안함로 下권 - 원동준>
< 단군세기- 이암 , 북부여기- 범장 >
<태백일사 - 이맥 >
. 환단고기의 4권의 책은 저마다 다른시대에 다른 저자가 쓴걸
'계연수'가 1911년 필사하여 4권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다.
계연수는 누구일까? 먼저 환단고기 필사를 할때 도움을 준건 모두 독립투사이고 대종교 단체이다.
계연수가 정확히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고있다.
< 환단고기 필사에 도움을 준 사람>
< 이유립이 공개한 최초의 환단고기 영인본>
환단고기는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이유립은 계연수의 제자이다. 이유립은 1979년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는데 1982년 부터
주목을 받게된다. 이 책은 이처럼 많은 수수께기를 가지고있다.
1911년 계연수가 필사한 환단고기 원문이 사라진점 , 그후 70년뒤 제자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점. 이책을 사료로서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다.
< 환단고기에 기록된 천문현상은 지금의 데이터와 대조해봐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는 수준>
그러나 환단고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환단고기엔 천문현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시물레이션과 비교해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는 정확성이다.
또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조선의 영토와 비파형동검의 출토지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도
환단고기가 진짜임을 밝히는데 중요한 근거가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환단고기의 삼성기와
같은 이름이 발견된다. 이 삼성기를 거둬들인 기록이 세종실록에 있다.
< 고려시대엔 없었던 '문화' '산업'과 같은 언어가 나온다>
그러나 환단고기의 출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현재로서 인정하지 않는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또 단군세기는 고려시대에 쓰여진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문화''산업'과 같은 고려시대엔
없었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환단고기엔 다른 책을 카피한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많다.
또 단군조선의 인구를 1억8천만구 , 즉 인구로는 9억명이라고 하는 점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점이다, 또 환단고기는 역사서라기 보다 경전과 흡사하기 때문에 사료로서
가치가 없다. 환단고기의 종교적 색체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환단고기에
대한 진위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논쟁은 우리 상고사에 대한 관심때문이다.
또 단군에 대한 기록을 역사로 볼것인가, 신화로 볼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있다.
단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에만해도 단군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신화로 머무르게 된것이다 .
오늘날도 단군은 역사적 존재와 신화적 존재사이를 포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단고기를 사료로 봐야한다는 재야사학계와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기존 학계와의 대립도
심각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