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74 불국사 - 그 이름에 담긴 비밀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21:45
불국사 - 그 이름에 담긴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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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토함산 기슭에 여유있게 자리잡은 불국사(佛國寺)는 1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친근한 절이다. 한때는 신혼 부부들이 꼬박꼬박 찾았던 신혼 여행지였고, 지금도 여전히 수학여행지 하면 불국사를 꼽는다. 최고의 기술력과 문화적 자신감, 그리고 신라인들의 간곡한 염원이 하나되어 만들어낸 불국사. 불(佛)국(國), 부처의 나라. 신라인들은 이 절에 불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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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보탑과 석가탑 |
불국사 대웅전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앞마당의 중심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신라에서는 절 하나가 들어서면 동시에 탑이 들어섰는데, 보통 쌍탑은 모양과 크기 조각수법까지 똑 같은 쌍둥이 탑이었다. 하지만 불국사에는 단순하면서도 기품 있는 석가탑과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다보탑이 대조적인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경전 속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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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가탑의 부장품 -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
1966년 석가탑은 천년동안 숨겨온 속 모습을 세상에 공개했다. 석가탑 2층 탑신에서 |
맨 처음 나온 것은 사각형 금동 사리함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청동으로 만든 비천상, 나무로 깎은 작은 탑들, 관옥, 수정, 구리비녀, 향을 싼 봉지도 나왔다. 그런데 가장 발굴팀의 관심을 끈 것은 비단 보자기였는데, 그 속에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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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지의 실체와 의미 |
복원공사로 인해 없어진 불국사의 연지(蓮池). 불교 세계의 완벽한 조화를 위해 존재했던 불국사의 연지는 과연 어디 있었던 것일까, 또한 연지의 물은 어디서 어떻게 끌어왔을까, 연지의 실체와 그 연지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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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람배치에 나타난 불국세계 |
불국사가 다른 사찰과 가장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가람의 배치가 독특하다는 것이다. 불국사는 공간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각 공간의 크기도 서로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각 영역들은 규모에서 분명한 차이를 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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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라인들의 불국사 사랑 |
불국사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석축이다. 수많은 돌들을 운반하고 가공했기 때문에 불국사는 20여 년이 넘어서도 완공되지 못했다. 그만큼 불국사가 얼마나 세우기 어려운 절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인들에게는 불국사가 꼭 필요했다. |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아래 사이트로 가서 불국사 모형을 먼저 보십시오
다 찾아 보았는데 이 모형만큼 좋은 사진이 없습니다^^ 이걸 보시면 불국사를 다시 가보시고 싶을 겁니다
너무 건성으로 본 것이 후회가 되어서.... 딱 지금 제 마음이거든요^^
(다른사진들은 맨 아래 올렸습니다 석가탑 다보탑에 대한 설명 보실 때 도움이 되실까 해서입니다.)

<불국사 전각배치도>
http://cafe.daum.net/aramse1/Eeuz/76?docid=1LFS5|Eeuz|76|20110122142705&srchid=IIMBw7zG400#A1826DA574D3A6A5A1F51F4
역사스페셜 <불국사(佛國寺)- 그 이름에 담긴 비밀>에 보면
불국사가 청운교 백운교 앞에 타원형의 큰 인공연못(연지)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연지(蓮池)를 만들었는지 영상이 오래 되어서 안 뜨기 때문에 대본에서 옮겼습니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앞에 연지가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름답고 장엄할 것 같아 숙연해집니다.
1200년 전 당시 신라인들은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규모가 큰 연못을 만났을 것이다.
불국사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연지의 규모가 상당히 컷던 것으로 보인다.
실측 결과 청운교 남쪽에서 발굴된 연못은
대략 동서39.5미터. 남북으로 25.5미터에 이르는
<타원형>이다. <깊이는 약 2내지 3미터 정도로
돌로 쌓아올려 지은 인공연못>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현재 청운교 앞의 공터와
정원수 공간이 모두 연지 터로 포함되는 자리였다.
MC, 재현된 연지 앞에서
자, 연지를 이렇게 복원해놓고보니 어떻습니까?
연지를 경계로 세속과 불국세계가 확연히 구분되고...
푸른 구름, 흰구름의 다리라는 청운교. 백운교의 의미도 완벽하게 살아나지 않습니까?
아마도 아침 저녁이면 연지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구름처럼 신비롭게 불국사를
감쌌을 겁니다. 그렇다면 보라빛 노을이란 뜻의 자하문도 그저 문학적인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현상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 청운교 백운교 올라가며
자, 그럼 저와 함께 청운교 백운교로 올라가보시죠.
불국토로 건너다주는 이 계단은 아래쪽 청운교 위쪽 백운교를 합해
모두 서른 세 개. 이 33은 깨달음의 과정을 나타내는 숫잡니다.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격는 일반 중생이 한발 한발 노력해서 부처의 세계에
가닿기위해 밟아올라가는 희망의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공덕을 쌓으며 이 무지개 다리를 다 올라서면 자하문이 열립니다.
===> 자하문 현판 아래 문 열리고
자색 안개 혹은 보라빛 노을 자욱한 문. 자하문.
이곳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불국세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무엇 하나 그냥 지어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조형물 하나, 건축물 하나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오묘한 조화의 세계를 이룬 불국사.
일주문을 지나면
사찰의 수문장 사천왕을 만난다.
세속과 불국세계의 경계인 연지를 지나면
볼 수 있는 것이 청운교 백운교.
신라인들은 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야한다.
한단 한단 오를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정상에 올라서면 거기서부턴 본격적인
부처의 나라다.
-석등 석가모니불의 성전 대웅전 마당을 장식하는
석등과 탑.
마음에 불을 밝히듯 스스로 진리의 등을 켜고
정진하면 깨달음에 가닿고
이승도 꽃밭이 될 수 있다.
아래 대본 출처 http://www.kbs.co.kr/end_program/1tv/sisa/history/vod/1267295_5020.html
佛國寺-그 이름에 담긴 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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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 20000624 |
동영상 : highSpeedVod(1267295); |
줄거리: 
대본:  | |
73회 역사스페셜 - 佛國寺 - 그 이름에 담긴 비밀 ------------------------------------------------------------------------------------- ▶프롤로그 #불국사 항공부감 팬~ (35) 신라 5악중의 하나, "경주 토함산 ! 그 이후 토함산 기슭에 한적하게 자리잡고있는 불국사.
-탑 걸리고 이 곳엔 1200년 전 신라인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불국사 현판 불국사, 신라인들은 왜 이 절의 이름을 불국이라고 했을까? ------------------------------------------------------------------------------------------ 서브타이틀 "불국사 그 이름에 담긴 비밀' ------------------------------------------------------------------------------------------
▶ST 1. 오프닝
==> 암전된 상태에서 벽면에 슬라이드처럼 한 장면씩 바뀌는... (불국사의 사계- 아름다운 전경중심) ==> 그 앞으로 등장하는 MC. (뒤에 나타난 불국사 화면이 MC의 얼굴. 겹쳐지고.) 뒤편 슬라이드 화면으로 한번 돌아봤다가 다시 정면으로....
불국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친근한 절입니다.
한때는 신혼부부들이 꼬박꼬박 찾았던 곳이고 지금도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불국사 아닙니까? 우리 문화재를 자랑할때도 첫손에 꼽았고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있는데요. 그렇지만 정작 우리는 불국사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일주문에서 나오며
너무 친근해서 오히려 무심하게 지나쳐왔던 불국사의 또다른 면모를 오늘 한번 들추어볼까 합니다. 우선 절 이름 불국사, 여기에 먼저 주목해보시죠.
===>배경에 佛國 두 자 떠오르고.
불국. 좀 이상하지않습니까? 부처 佛(불). 나라 國(국) 부처의 나라라... 다른 절과는 너무나 색다른 아주 독특한 이름인데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그 궁금증을 푸는 첫 번째 단서가 불국사 앞마당에 있습니다.
===> 석가탑. 다보탑 MC 좌우로 하나씩.
다보탑. 그리고 석가탑.
==>탑 돌아보며
이곳에서 기념사진 찍던 생각나십니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 한 앵글에 두 탑을 다 넣고 내가 주인공으로 딱 버티고 찍고 싶은데 잘 안됐던 기억말입니다. ==> MC, 두 탑 돌아보며.
그런데 잘 보십시오. 그때는 못느꼈지만 두 탑은 너무나 다른 모양을 하고있습니다. 왜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모양의 두 석탑이 유독 불국사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 ▶VCR (1) #불국사 전면 야경(16) 불국사가 세워진 것은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때이다. 그 후 몇 차례 재난을 당할 때마다 중건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회랑 위로 올라가는 크레인.(18) 불국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다보탑과 석가탑. 대웅전 앞에 나란히 자리잡고있는데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왔다. #두 탑 우팬 (9) 왜 다보탑과 석가탑은 이렇게 절 마당의 중심을 차지하고 서있는 것일까? ------------------------------------------------------------------------------------------ #성타스님 (불국사 주지) ~사리가 모셔진 탑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생각하면서 탑이 바로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 ------------------------------------------------------------------------------------------ #삼국유사~(18) 삼국시대부터 신라 경주에는 절과 탑이 많았다. 삼국유사는 당시 모습을 여덟자로 축약해 기록하고 있다. 사사성장 탑탑안행. '절은 하늘의 별처럼 자리잡았고 탑들은 기러기 날으는 양 높이 솟았다.'는 말이다.
#신라왕경도~(28) 신라왕경도에서도 곳곳에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사찰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절이름 팬 분황사. 황룡사. 미탄사. 황복사. 중생사... 신라 어디에나 절 하나가 들어서면 동시에 탑이 들어섰다. 처음에 한 개의 탑이 생겼다가 통일이후엔 쌍 탑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감은사지 찾아가는 트레킹~(36) 최초로 쌍 탑이 세워진 곳이 바로 감은사.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이 절의 쌍 탑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탑 t.s 틸업 탁월한 균형미로 이후 삼층석탑의 원형이 된 이 감은사지 석탑. 그 모양과 크기, 조각수법까지 똑같은 쌍둥이 탑이다.
#다보탑. 석가탑 2s(53) 그런데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에 동서로 서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 모양이 너무도 판이하다.
-석가탑 틸업 석가탑은 간결하면서도 육중한 힘이 느껴지는 기단부와 경쾌한 비례로 쌓아올려진 탑신부로 인해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다보탑 틸업. 이에 비해 다보탑은 석재를 목재처럼 자유롭게 사용하여 각층마다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으로 두 탑을 만든 것일까? 해답은 경전 속에 있다. ------------------------------------------------------------------------------------- #박경식 교수 인터뷰 (단국대 사학과) ~ 반대로 다보탑이라면 다보여래가 저 안에 계시다는 개념으로 탑이 조성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법화경 펼쳐지고~(20) 법화경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가 중생들에게 그의 진리를 설명하자, 과거불인 다보부처가 그 말이 진리임을 증명했다'고 한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다. #항공 부감(10) 이렇게 법화경의 내용을 고스란히 표현해서 세운 것이 다보탑과 석가탑인 것이다. 그래서 두 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다보탑 보고 서있는 두사람~(12) 얼마나 법화경을 충실히 옮겨놨는지는 우선 다보탑의 모습에서 더욱 명확하게 찾을 수 있다. ------------------------------------------------------------------------------------- #박경식 교수 인터뷰/ ~굉장히 크고 높다. 난간과 감실이 수천개씩 있다고 기록돼있습니다. ------------------------------------------------------------------------------------- #법화경(30) 법화경에서 다보 부처의 화신인 다보탑은 오천개 난간에 작은 방도 천만개나 되고 무수한 깃발이 휘날리며 억만개의 화려한 방울이 달려있다. 그 뿐아니라 사면에선 아름다운 향이 뿜어나오고 하늘에서 둥근 꽃이 비오듯 뿌려졌다한다. 지극히 화려한 모습이었음이 명확하다. #CG 짜맞춰지고~(1'19) 다보탑을 보면 제일 밑바닥에 네모난 기단이 세워져있고 네 면엔 각 각 열 개의 계단이 자리잡고 있다.
그 위에 기와집같은 추녀를 얹고 사각의 난간을 둘렀다. 또 팔각정을 세우고 대나무 기둥을 박은 다음 연꽃소반을 올렸다. 그 위에 팔각판을 얹고 상륜부를 만들었다.
그 어느 탑보다 복잡한 구조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사상은 아주 단순하다.
아집과 독선에 사로잡힌 네모난 중생이 정진을 함으로서 모서리가 떨어져나가고 팔각으로, 다시 원형으로...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사람만이 불교의 최고경지를 상징하는 연화세계를 만날 수 있다.
난간에 숨겨진 대나무 기둥은 연화세계에 이르기 위한 꺽이지 않는 힘의 상징이다.
#기단부의 돌사자상(21). 다보탑에는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돌사자... 돌사자는 이런 부처의 진리를 전파하기위해 필요한 조형물이다. ------------------------------------------------------------------------------------- #도업스님 인터뷰: ~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해서 만든 그런 모습이죠.// ------------------------------------------------------------------------------------- #석가탑(18) 경전에 충실했던 것은 석가탑도 마찬가지였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바위를 깔고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표현해놓고 있다. -석가탑 기단 바위. 석가탑은 신라시대 다른 석탑들과 유사하지만 석가탑에만 보이는 유일한 특징, 바로 팔방금강좌다. .
------------------------------------------------------------------------------------- #법륜스님 인터뷰: ~ 거기에 부처님께서 다 앉으시도록 했다. 이런 것을 상징하기 때문에// -------------------------------------------------------------------------------------
(17)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두 탑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란히 서있는 이유는 경전의 내용을 이 땅에 이루고자하는 신라인들의 바람 때문이다. ▶ST 2.
==> MC 다보탑 뒤에서 걸어나오면 카메라 F.S로 빠지면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 걸리고. 대웅전 쪽으로 한 두걸음 걸어가며.
다보탑, 석가탑. 이것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다보부처, 그리고 석가부처의 모습이었다는 거죠.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조형물로 완성시킨 것이라구요.. 그런데 이 두 탑이 경전에 따라서 형상화 한 것이란 또다른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이곳 석가탑에서 나왔습니다.
===> MC, 석가탑 쪽으로 걸어가며...
1966년 이 석가탑은 천년동안 숨겨온 자신의 속모습을 처음 세상에 공개하게 됩니다. 문화재 관리국에서 훼손과 도굴을 막기위해 석가탑의 해체 복원 공사를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 MC, 석가탑의 2층 탑신 부분 가리키며.
바로 이곳 2층 탑신에서 가로 세로 41센티. 깊이 19센티 크기의 네모진 구멍이 발견되고 거기서 석가탑 속에 함께 봉안한 부장품들이 쏟아진 것입니다. 모두 국보급 반열에 들어가는 귀중한 유물들이었는데요.
자, 그럼 석가탑 몸체부에서 당시 무엇이 나왔는지 한번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 ▶VCR (2) #CG 석가탑에서 부장품 나오는~(16) 석가탑 2층 탑신에서 맨처음 나온 것은 사각형 금동사리함이었다. 뒤이어 청동으로 만든 비천상, 나무로 깍은 작은 탑들. 관옥. 수정. 구리비녀. 향을 싼 봉지도 나왔다. #비단 뭉치 t.s~(23) 그런데 가장 발굴팀의 관심을 끈 것은 비단보자기. 그 속에는 폭 6.7센티 미터, 길이 6.2미터의 두루말이 경전이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있었다. 바로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그렇다면 다라니경은 과연 무엇일까? ------------------------------------------------------------------------------------- 그것이 팔만대장경을 다 포함하고있다.이런 뜻입니다. ------------------------------------------------------------------------------------- #다라니경 팬~(27) 그런데 석가탑에서 나온 이 다라니경이 관심을 집중시킨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8세기 초까지 사용되었던 중국 측천무후시대의 글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이 다라니경은 적어도 751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대를 추정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황복사 사리함.~(15) 8세기 초에 건립된 황복사 사리함 뚜껑에 새겨진 글이다.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라는 글씨와 석가탑 다라니경의 글씨체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이 다라니경이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란 것을 증명하고 있다. ------------------------------------------------------------------------------------- #박방룡 인터뷰 -목판인쇄의 원조는 우리 한국이란게 밝혀져서... ------------------------------------------------------------------------------------- #다라니경 팬(21) 세계최고의 목판인쇄물인 이 다라니경은 발견 당시 워낙 부식이 심해 서른세 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현재는 과학적인 복원과정을 거쳐 전체가 원상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신라인들은 이 다라니를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던 것일까? #사경하는(45) 첫 작업은 경전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정결한 몸으로 신비로운 축문 다라니를 한 자 한 자 베껴 쓰는 사경작업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지극 정성이 담겨야한다. -글쓰는 글자 하나를 쓸 때마다 매번 절을 할 정도로 마음을 쏟았다. -여신도 프로필 이렇게 석가탑 다라니경의 글자 하나하나는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쓰는이의 혼이 담긴 결과물인 것이다. #고인쇄 문화전수관 들어가는...(20) 이렇게 정성을 다하여 한자 한자 베껴쓴 후에는 판각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는 세계 최고의 신라 목판 기술이 접목된다. 옛날 그대로 판각을 하고있는 고인쇄 전수관을 찾았다. 이곳에선 지난 1991년 석가탑에서 나온 다라니경을 그대로 복원해냈다. 오천삼백서른 여섯자를 목판으로 복원해내는데는 13개월 이상이 걸렸다고한다. -복원한 목판본 팬. 흘리다가~(17) 취재팀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실제 크기 대로 판각해줄 것을 의뢰했다.
-판각하는 임씨.(25) 폭 6.7센티미터의 목판에다 글자를 새기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몇 미리미터의 오차. 손의 힘 조절에 따라 목판 전체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에 최고의 장인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못할 일이었다. ------------------------------------------------------------------------------------- #임인호 인터뷰 - 거의다 요만한 글짜 아닙니까...눈에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 ------------------------------------------------------------------------------------- #돋보기로 보고~(35) -작아서 잘 보이지않는 글자를 돋보기로 확인해가며 하루에 판각할 수 있는 글자는 열여섯 자 정도.
-목판 뒤집어보고. 목판의 앞 뒷면에 꼬박 이백마흔 자를 새기는데 보름이 족히 걸린다고 한다. 이렇게 다라니경을 사경하고 판각해서 탑 안에 봉안했던 신라인들의 기술은 당시로선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 #오국진 인터뷰 - 신라인들의 과학기술의 총집합체로 봐야... ------------------------------------------------------------------------------------- #묶여있는 다라니경 펼치는(38) 통일신라 당시 최첨단의 목판인쇄기술과 당대사람들의 뜨거운 열망이 한데 농축되어 있는 무구정광 대다라니경.
-팬 왜 신라인들은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않는 이 다라니경을 불국사 석가탑 속에 모셔두어야만 했을까? ------------------------------------------------------------------------------------- #법륜스님 인터뷰- ~ 이런 것들 모시고 지극하게 기도하게되면 모든 재난이 사라진다. //
#CG 탑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16) 재난이 없는 세상을 갈구했던 신라인들은 석가탑의 모습 뿐 아니라 그 속까지도 경전의 세계로 만들고자했다. 결국 신라인들의 이런 열망은 세계최고의 목판 인쇄물까지 만들어냈던 것이다.
------------------------------------------------------------------------------------- ▶ST 3. 연지의 실체와 의미는?
이렇게 신라인들은 경전을 형상화해서 탑을 만들고 그 속에 온갖 정성을 담은 다라니경까지 넣음으로서 조형물에 혼을 불어넣으려 했던 것입니다.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 나온 석가탑은 또 한가지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 여러분도 잘 아시죠? 무영탑입니다. #연극中 백제석공 아사달과 아사녀. 둘은 혼인한지 얼마 되지않았는데요. 백제 석공 아사달이 석가탑을 만들기위해 신라땅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않자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 서라벌로 오게됩니다. 탑이 완공되면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게되고 그때서야 남편은 돌아온다고했는데 날이 가고 달이 바뀌어도 연못엔 석가탑의 그림자가 떠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하루하루 매말라가던 아사녀. 결국 연못에 뛰어들어 자결하고맙니다.
끝내 그림자가 보이지않아서 석가탑이 무영탑, 즉 그림자 없는 탑이 됐다는데.... 그럼 과연 불국사 어디에 석가탑이 비칠만한 연못이 있었다는 걸까요?
여기서 잠시 조선시대 차의 성인이라 불리던 초의선사의 시 한 수를 살펴보시죠.
===> 허공 중에 초의선사 시 뜨고.(한자) 승천교외 구연지/ 칠보누대 수저의 / 무영탑간 환유영/ 아사래감 도금의
'승천교 밖의 구연지에 칠보누대 아롱지고 / 무영탑 그림자를 보노라니 아사녀가 와서 보는 듯하구나....'
그곳에 분명히 연지가 있었고 석가탑의 그림자까지 거기 비쳤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탑 그림자가 비칠만한 연지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요?
▶VCR (3)
#불국사 폐허사진~(15) 처음 세울 당시엔 2천여간의 웅장한 전각으로 이루어졌던 불국사. 비를 맞지않고도 경내를 다닐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몇 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수난을 당했다.
#불국사 복원공사 당시 화면(20) 불국사 복원의 노력은 계속 이어져왔다. 그러나 불국사가 그나마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은 70년대 초반의 대대적인 발굴복원공사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당시 불국사 발굴복원공사 보고서에는 흥미있는 사진 한장이 실렸다. -웅덩이에 비친 석가탑 그림자 사진. 발굴조사를 진행하던 중 내린 비로 웅덩이에 물이 고이자 말로만 전해지던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쳤던 것이다. 그 곳은 바로 연지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당시 복원공사에서 연지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 #사찰조경연구소 들어가는(8) 불국사 연지의 실체에 대해 연구하고있는 동국대 사찰조경연구소를 찾았다.
이곳의 조경학과 홍광표 교수는 복원되지않은 연지의 구체적인 모습을 되살리기위해 준비작업 중이다. 우선은 불국사 발굴복원보고서 에서 밝힌 연지의 위치와 크기 등이 타당한지 검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 #현장에서 실측해보는(18) 홍광표 교수팀과 함께 불국사 현장 실측조사에 나섰다. 이곳에 과연 얼마만한 규모와 어떤 모양의 인공연못이 가능할지 직접 현장에서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원경 가리키며 실측하는~ (33) 불국사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연지의 규모가 상당히 컷던 것으로 보인다. 실측 결과 청운교 남쪽에서 발굴된 연못은 대략 동서39.5미터. 남북으로 25.5미터에 이르는 <타원형>이다. <깊이는 약 2내지 3미터 정도로 돌로 쌓아올려 지은 인공연못>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현재 청운교 앞의 공터와 정원수 공간이 모두 연지 터로 포함되는 자리였다.>
#항공촬영 일주문-->연지자리까지(14) 1200년 전 당시 신라인들은 청운교 백운교 앞에서 규모가 큰 연못을 만났을 것이다.
그럼 연지까지 물은 어디서 어떻게 끌어왔을까? 계곡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라왕경도에 CG 표시. 토함산 정상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불국사가 나온다. 이 계곡을 따라 흘러 내려온 물이 불국사 연지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 계곡 물을 어떻게 연지로 끌어들였을까? #이덕홍의 동경유록 중(1'05) 조선 선조때 문인 간재 이덕홍의 기행문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덕홍이 경주를 여행하고 쓴 동경유록에는 불국사의 구석구석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그의 글에 따르면 "~한 돌다리를 건너니 큰 바위 위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 북쪽에 나무 홈통을 통해 날으는 샘처럼 물이 횡으로 멀리 흐른다. 물이 떨어지는 아래에는 석조가 있고 날으는 샘 위 쪽에는 구름다리가 있는데 그다리는 돌을 깍아만든 무지개와 같았다."
#홍교수 현장음 살리고 "비구를 통해서 나무홈통에 물담아서 이곳 통해서 저쪽 뒤쪽으로 물을 인수를 한거죠. 관재선생 본 것처럼 비구가 상당히 어느정도 높이에서 떠가지고 이쪽으로 와있는 그 모습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토함산 정상부터 시작된 계곡물이 일정 높이로 설치돼있는 나무홈통을 통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교수 현장음 살리고." 불을 인수를 시켰을 겁니다."~ 그것이 폭포로 떨어져서 석조에 직폭이 떨어지는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물이 흘러 들어왔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범영루 아래쪽에 있는 물받이와 배수구다. 이 배수구를 통해 나오는 물은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아니었다.
#불국사 범영루 불국사 경내에서 물이 흘러나왔던 곳이 있었다.
무설전 대웅전 뒷편에 위치한 무설전 근처엔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홍교수 "무설전 강당의 동편쪽으로 이부분이 과거에 샘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있는 자립니다." ~회랑 안에는 샘이 있을 수 없으니까 뒤 언덕으로부터 ~ 충분히 물이 있을 수 있는 자리라고 봐집니다."
#도면 설명 이 샘의 물은 무설전을 거쳐 대웅전 서편으로 흘러 범영루 옆으로 난 배수구에 도달하게된다.
#홍교수 "대웅전 영역의 우수배수하고 샘에서 나오는 물을 지하에 묻혀있는 석구 통해서 이쪽으로 인수시켜 이곳 석누조 통해서 바로 이곳 폭포로 떨어뜨리게해서
이렇게 계곡물과 샘물이 서로 만나 연지는 늘 깨끗한 물로 가득 채워졌던 것이다. ------------------------------------------------------------------------------------- #홍교수, 학생들과 그래픽 의논 현장음 살리고. "원형을 복원하기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부감된 항공사진을 놓고 구품연지를 복원해보려고하지..." #그래픽 작업(19) 동국대 사찰 조경연구소에서는 현장 확인을 통해 조사된 내용을 종합해서 컴퓨터에 입력하고 그래픽으로 불국사 연지를 복원해보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연못은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 #홍광표 교수 인터뷰 - ~ 공간을 보다 환상적으로 연출하려고하는 그런 의도도 숨어있지않았겠나.. ------------------------------------------------------------------------------------- #CG 연지 재현 - 음악 살리고. 불국사를 세웠을 당시 신라인들에게 이 연지는 왜 필요했을까? ------------------------------------------------------------------------------------- #김상현 교수 인터뷰- ~ 아름다운 세계로 가려고할 때 배를 타고가거나 다리를 건너거나 수레를 타고가야하겠죠..//까지 ------------------------------------------------------------------------------------- #CG 연지 재현 불국사, 연지. 그것은 지금은 잃어버린 신라인들의 또다른 불국 세계였다.
------------------------------------------------------------------------------------- ▶ST 4.
===> MC, 재현된 연지 앞에서
자, 연지를 이렇게 복원해놓고보니 어떻습니까? 연지를 경계로 세속과 불국세계가 확연히 구분되고... 푸른 구름, 흰구름의 다리라는 청운교. 백운교의 의미도 완벽하게 살아나지 않습니까?
아마도 아침 저녁이면 연지에서 피어오른 안개가 구름처럼 신비롭게 불국사를 감쌌을 겁니다. 그렇다면 보라빛 노을이란 뜻의 자하문도 그저 문학적인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현상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 청운교 백운교 올라가며
자, 그럼 저와 함께 청운교 백운교로 올라가보시죠. 불국토로 건너다주는 이 계단은 아래쪽 청운교 위쪽 백운교를 합해 모두 서른 세 개. 이 33은 깨달음의 과정을 나타내는 숫잡니다.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을 격는 일반 중생이 한발 한발 노력해서 부처의 세계에 가닿기위해 밟아올라가는 희망의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공덕을 쌓으며 이 무지개 다리를 다 올라서면 자하문이 열립니다.
===> 자하문 현판 아래 문 열리고
자색 안개 혹은 보라빛 노을 자욱한 문. 자하문. 이곳을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불국세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무엇 하나 그냥 지어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조형물 하나, 건축물 하나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불국사는 하나하나의 조형물에만 그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 보시죠.
===> 항공촬영
불국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굉장히 복잡한 구조로 돼있는데요. 공간이 확연하게 구분돼있고, 각 공간의 크기도 서로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 ▶VCR (4) 가람배치에 나타난 불국세계는?
#불국사 부감. 각 영역. 드러나고. 불국사가 다른 사찰과 가장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가람의 배치가 독특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각이 배열돼있는데 불국사는 회랑 즉 담장을 쳐서 각각의 건물들을 독립시켜놓았다.
-자막 불국사의 주요건물로는 청운교. 백운교 범영루. 자하문. 좌경루가 있고 뒤쪽으론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으며 회랑이 빙둘러 쳐져있다. 그리고 불국사 뒤편으론 관음전. 비로전이 있다.
-자막 대웅전 옆에 있는 극락전은 연화교. 칠보교 안양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불국사의 전각들은 서로다른 공간으로 이뤄져있는 것이다.
#회랑에서 팬 대웅전 불국사의 중심인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가 머물고 있고 현실세계를 상징하는 곳이다. 법화경을 바탕으로 지어진 세계다.
#탑 꼭대기에서 줌아웃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부처가 머물며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곳이다. 아미타경에 근거해서 세워졌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이 머무는 비로전. 영원히 꺼지지않는 진리의 빛을 상징하고 있다. 화엄경이 바탕을 이룬다.
#관세음보살 가장 낮은 백성, 가장 고통받는 자를 손수 돌보는 관세음보살은 바로 관음전에 머물고 있다.
#항공 불국사 전각 불국사는 이렇게 다양한 부처들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법륜스님 인터뷰 - 각 불국 따로따로 건설하면서~ 화단의 꽃이 종류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지만 같이 피어서 아름다운 화랑을 이루고 있지않습니까? ------------------------------------------------------------------------------------- #항공화면. 그렇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각 영역들은 규모에서 분명한 차이를 두고 있다. #각 영역별 크기비교(CG) 대웅전 영역은 좌우 폭 51미터. 전후 폭은 71미터인데 극락전 영역은 좌우 폭이 38미터. 전후 폭이 42미터이다. 이를 평수로 계산해보면 대웅전 쪽은 1072평. 극락전 쪽은 473평이다. 대웅전의 넓이가 두배가 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각의 넓이 만 봐도 대웅전이 훨씬 크다. #범영루 틸다운 범영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한 전각의 넓이가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된다. -F.S 넓이 뿐 만 아니라 높이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데 대웅전 영역이 극락전 영역보다 석축 한단 만큼 더 높다.
#정면도 높이의 차이는 불국사 정면도로 보면 더욱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팬. 또한 극락전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면 건물 한 채 높이로 대웅전이 높게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석축 틸업 이렇게 대웅전과 극락전은 높이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있는 셈이다.
#횡단면도 그렇다면 아미타부처의 극락전보다 석가모니 부처의 세계인 대웅전이 크고 높게 강조된 이유는 무엇일까? ------------------------------------------------------------------------------------- #법륜스님 인터뷰 - ~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를 중요시하고 강조하는 측면에서 더 크고 높게 형상화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불국사 영상 (23) 불국사를 지었던 신라인들에게는 살아있는 현실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부분이 강조됐다고 해서 다른 부분이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었다. 뛰어난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신라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이런 신라인들의 생각을 불국사는 표현해놓고 있는 것이다. ------------------------------------------------------------------------------------- #김상현교수 인터뷰 - ~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상세계를 한꺼번에 보여주고자하는 것이다. ------------------------------------------------------------------------------------- #뒤 영상처리(2'02) -일주문
오묘한 조화의 세계를 이룬 불국사.
일주문을 지나면 사찰의 수문장 사천왕을 만난다.
세속과 불국세계의 경계인 연지를 지나면 볼 수 있는 것이 청운교 백운교.
신라인들은 그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야한다. 한단 한단 오를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정상에 올라서면 거기서부턴 본격적인 부처의 나라다.
-석등 석가모니불의 성전 대웅전 마당을 장식하는 석등과 탑.
마음에 불을 밝히듯 스스로 진리의 등을 켜고 정진하면 깨달음에 가닿고 이승도 꽃밭이 될 수 있다.
------------------------------------------------------------------------------------- ▶ST. 5
===>불국사 입구(청운백운교. 연화칠보교 있는-) 앞으로 걸어 나오며 뒤쪽 불국사 보다가...
어떻습니까? 불국사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죠. 불국사 가람은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예사롭게 지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 하나의 공간이 따로 존재하는 듯 하면서도 보다 큰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파와 서로 다른 경전의 가르침이 조화를 이루고있는 것이죠.
===>불국사 전면 같은 높이로 보이다가 대웅전 영역 솟아오르는
특히 크고 웅장한 대웅전에선 죽어서 가는 내세보다 내가 살고있는 현실세계를 훨씬 더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현실세계를 부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임에 틀림없는데요.
그 때문에 신라인들은 아무리 하찮는 건축에도 온갖 정성을 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성을 다했다는 얘기는 그것이 꼭 필요했다는 뜻인데요. 그렇다면 왜 그들에겐 불국사를 만드는 것이 왜 그토록 절실했을까요?
▶VCR (6) #석축 크레인 다운.(33) -석축의 갖가지 모습 불국사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석축.
칼로 베어낸 듯한 인공석에서 마구 가져다 심은 듯한 자연석까지 수많은 돌들이 불국사를 이루고 있다. 이 거대한 돌들은 불국사가 얼마나 세우기 어려운 절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국사가 20여년이 넘어서도 완공되지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돌의 운반과 가공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양의 돌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항공 불국사가 자리잡은 토함산. 석재전문가와 그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산 속 아직도 토함산 여기저기에는 불국사에서 사용된 돌을 떼낸 흔적이 쉽게 발견된다. -현장음 살리고. "바로 이거네.." 토함산에 있는 대부분의 돌이 화강암이고 불국사에서 쓰여진 돌이 화강암인 것을 미루어볼 때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응을 짐작케한다. 토함산의 돌들은 불국사를 건립하는데 유용하게 쓰였던 것이다. ------------------------------------------------------------------------------------- #차 트레킹(14) 그렇다면 이 돌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어떤 방식으로 다뤄진 것일까? 삼국시대 방법 그대로 산성을 쌓고있는 이천의 설봉산성.
#공사현장(10) 이곳에서 불국사의 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
#쇄기 만져보고..(16) 우선 쐐기를 박아 돌을 잘라낸다. -쐐기박은 곳 망치로 치는. 살리고 #목도하는(5) 그렇게 잘라낸 돌 하나하나도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져날라야한다.
#축대 높이(10) 이렇게 폭 68미터. 높이가 5미터에 이르는 설봉산성을 만드는데 10개월정도 걸린다고한다.
#현장음 살리고. 총인원은 현재 14명이 투입됐는데. 석공이 6명 등...
#돌 쪼는 사람들(12) 열네명의 전문가가 잠시도 방심하지 못하고 매진하는 작업에서 불국사를 세우던 신라인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불국사 축대. 홍예(24) 특히 불국사의 석축은 길이도 설봉산성보다 훨씬 긴 90미터인데다가 인공석과 자연석을 섞어 쌓아야하기 때문에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홍예 이런 기술을 가진 신라의 수많은 돌 전문가들이 판석 하나를 가다듬고 제자리에 끼우는데 엄청난 공력이 들었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권오달씨 석축에 다가가는 뒷모습.
#권오달. 현장음 살리고 "하루에 하는 것이 이 30센티 세배. 요만큼 하루에 한다고.~ 요거하나가 15일 정도 계산해야한다."
#불국사 발굴보고서(13) 당시 불국사 공사가 얼마나 대규모였는지는 70년대 초 불국사 복원 공사보고서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현대기술로도 5년동안 총 86,000명. 그 중 석공은 삼만삼 삼천 구백명이 투입된 엄청난 공사였던 것이다.
#삼국유사 김대성편(21) 삼국유사에도 불국사 공사에 신라가 총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대성이 751년 불국사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23년 후에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기록돼있다. 그렇다면 당시 신라는 어떤 시대이길래 그런 대규모 공사를 시작한 것일까? #통일신라시대의 문화유산 (57) 불국사가 세워졌을 무렵은 신라문화의 전성기였다. 수많은 걸작들이 이때 만들어지고 세워졌다.
-사사자삼층석탑 독특한 석탑 양식과 탁월한 조형미가 돋보이는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감산사미륵보살상 유려한 석재가공기술과 함께 온화한 불상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는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안압지 자연과 인공이 이뤄낸 조경예술의 극치 안압지. 모두 세계적인 유산이다.
그런 문화적 토대와 자신감 위에 불국사는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김상영교수 인터뷰 - ~ 그것이 곧 불국사 창건의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있다. ------------------------------------------------------------------------------------- #불국사 영상(9) 이러한 모든 배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라인들의 마음이었다. ------------------------------------------------------------------------------------- #법륜스님 인터뷰 - ~ 정말 신심으로 지었다. ------------------------------------------------------------------------------------- #영상(17) 계층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순수한 마음 하나로 힘을 모은 사람들. 불국사는 당대 신라인들의 열망이 결집하여 이루어낸 산물이었다. ------------------------------------------------------------------------------------- #법륜스님 인터뷰 - 그들의 어떤 이상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영상(11) 그래서 불국사는 12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절로 남아있는 것이다.
------------------------------------------------------------------------------------- ▶ST 6. 마무리
통일을 이뤄낸 지 100년이 지난 후 신라는 정치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고 문화 또한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신라인들은 소중하게 얻은 이 안정과 평화가 영원히 이어지길 꿈꾸었을 겁니다.
대립과 갈등. 전쟁이 다 사라진 평화의 땅, 이상세계를 멀리서 찾으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이 신라 경주에 부처의 나라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국삽니다.
최고의 기술력. 문화적 자신감. 그리고 신라인들의 간곡한 염원이 하나되어 만들어낸 이상세계. 불국사. 그래서 신라인들은 이 절에 감히 '불국'이란 이름을 당당하게 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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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佛國寺-그 이름에 담긴 비밀? | |





<황복사 삼층석탑 사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