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5 고려시대, 우리는 로켓을 쏘았다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8:37

고려시대, 우리는 로켓을 쏘았다 
‘행주산성의 승리는 내가 화차를 가지고 있었음이라’ 권율장군은 행주대첩 승리의 공헌을 ‘화차’에 돌렸다. 600년 전 고려는 로켓원리를 이용한 강력한 화약무기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1. 주화 비행의 비밀
날아가는 불이라는 뜻의 주화. 주화는 언뜻 보면 화살과 비슷하다. 하지만 화살은 화살대 뒤에 홈이 파져 있어 활 시위에 걸고 당기면 그 힘으로 날아가지만, 주화에는 그런 홈이 없다. 그럼 고려시대 만들어진 이 주화는 어떻게 날아갔을까?
2. 진포해전
옛날에 진포로 불렸던 전북 군산항은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을 모아 놓은 창고, 이른바 조창이 발달했던 곳이다. 그래서 왜구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급기야 1380년에는 5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왜군이 쳐들어왔다. 하지만 고려 수군은 왜구의 5분의 1의 병력으로 왜선 500척을 모두 불태우며 왜구를 섬멸한다. 고려 수군에는 주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3. 정교한 설계
스스로 멀리 날아가 적을 공격하는 주화의 힘은 약통에 있다. 하지만 화약을 넣고 태우는 이 약통은 불에 잘 타는 종이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약통에 달린 막대는 아주 길다. 여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4. 최무선의 화약발명
주화를 발사하려면 반드시 화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 세계에서 화약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화약 제조법을 국가적인 기밀로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스스로 화약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려의 최무선이다.
5. 신기전과 다연발 화차
화약 제조술이 발달하면서, 주화에 폭탄을 연결한 신기전과 수레에 신기전 발사대를 설치한 화차 등 주화는 새롭게 발전한다. 신기전은 요즘의 탄도 미사일 같은 것이다. 또 화차는 지금의 다연발 로켓포와 비슷한 것이다. 100개의 신기전이 동시에 발사되고, 이동도 할 수 있는 화차. 이 가공할만한 무기의 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6. 행주대첩의 승리

화차가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것은 행주산성 전투였다. 1593년 2월 12일 새벽 6시, 왜군은 총력을 다해 행주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때 행주산성을 공격하는 왜군은 3만 명. 이에 비해 조선군은 단지 8천명. 대단한 열세였다. 더욱이 행주산성은 토성으로 성벽이 없어 조선군은 왜군과 전투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었다. 행주대첩을 지휘한 권율장군은 화차의 공헌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행주산성의 승리는 내가 화차를 가지고 있었음이라.” 

 

 

고려시대의 로켓인 주화가 있다 이는 1380년에 제작되었는데 유물은 남아있지 않다

 

 

<국조오례서례> 의 병기도설이었다. 조선시대 세종 연간에 간행된 이 책에는 여러 화약 무기 설계도와 제작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이 책의 신기전 기록은 지금까지 발견된 로켓 설계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세종 30년 이전에는 로켓이 없는가 찾아봤다. <화포식언해>에 기록 같다는 기록이 보였다. 신기전처럼 로켓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진 주화. 문헌을 찾아본 본 결과, 주화가 고려시대 우왕 대에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 주화는 어떻게 스스로 날아갈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주화에 부착하는 화약통, 즉 약통안에 있다. 약통안에는 화약이 잘 탈 수 있도록 빈 원추형 공간을 만든다. 이 공간이 있어야 주화가 추진력을 낼 수 있다. 공간 크기에 따라 추진력 결정된다. 추력 작용 방향도 결정된다. 화약이 탈 수 있는 약통 내부의 공간은, 반드시 정해진 크기대로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조오례서례>는 반드시 뾰족한 철침을 끼워 약통안에 공간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때 약통안에 있는 공간의 크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내부 공간의 끝에 있는 약통구멍의 크기이다. 구멍 크기 또한 정밀해야 한다. 구멍을 통해 화약을 태운 연소가스가 빠지며 추진력을 내기 때문이다. <국조오례서례>는 약통 밑에 뚫려 있는 구멍의 크기까지 정확하게 정해두고 있다. 소주화의 경우 구멍의 크기는 1푼 3리. 여기서 '리'라는 단위는 0.31미리미터. 대단히 정밀하다. 이렇게 구멍 크기를 정밀하게 지시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구멍 크기가 로켓 성능 크기 작용한다. 구멍 크기 너무 크면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너무 작으면 통이 폭발해 사용못한다 주화의 사정거리는 250에서 280미터. 이것은 역시 멀리 있는 적을 공격 하는 활의 사정거리와 비교해 봤다. 화살의 사정거리는 150에서 100미터로 250미터를 넘는 주화는 화살에 비해 그 사정거리를 획기적으로 연장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멀리 날아가는 주화가, 처음 위력를 발휘한 것은 바로, 1380년 진포해전이었습니다. 전북 군산항, 옛날에는 진포로 불렸던 곳이다.
진포는 가까이 만경평야, 금강평야 같은 곡창지대가 있어, 세금으로 바치는 곡식을 모아 놓은 창고, 이른바 조창이 발달 했다. 당시 국가가 관리하는 곡식창고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진성창도 이곳에 있었다.  특히 금강 하구에 있는 진포는 인근지역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식들이 바다를 통해 개성까지 운반되는 수운의 중심지였다 이것은 1350년 경부터 일본의 해적집단인 왜구들이 진포에 자주 침입해 들어오는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왜구로 인한 피해는 막대했다. 한때 14년 동안에만 침략 횟수가 총 380번. (이들이 지나간 곳은 어김없이 초토로 변했다.) 왜구들이 자주 몰려오는 바다 가까운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텅 빈 마을이 되었다. 유민이 늘어나고, 국가의 재정도 위협을 받았다.

 

 

고려 왕실은 왜구 소탕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려고 고심했다. 그러나 왜구들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이른바 게릴라 식 전법으로 고려군대를 따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600년전 이곳 진포에서는 고려군과 왜구 사이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의 전투가 벌어졌다.
1380년, 왜구는 내륙지역을 약탈을 하기 위해 진포에 배 5백척을 몰고 왔다. 배 5백척, 당시 한척에 탈 수 있는 인원을 100명만 잡아도, 5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병력이었다. 이때 고려 수군의 배는 100척. 병력은 왜구들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려수군은 왜구들이 약탈한 곡식을 배에 싣고 있을 때, 왜구의 배를 공격했다. 고려군은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태웠다. 50여년 동안 고려 전역을 불안에 떨게 했던 왜구들이 섬멸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전투의 상황을 <고려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배에 있던 왜구들은 모두 불타죽거나, 바다에 빠져 죽었다>이전과 달리, 고려의 수군이 이처럼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당시 최신 무기였던 화포, 그중에서도 특히 로켓 무기 주화가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주화를 쏘면 그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듣는 자는 모두 항복한다> 주화의 위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멀리까지 날아가는 주화는 당시 해상전투의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기존의 해상작전은 당파전술. 주화가 사용됨으로써 이런 근접전의 방법에서 탈피해서 원거리 작전이 가능했다. 이렇듯 주화를 사용한 진포해전을 기점으로 왜구의 기세는 크게 꺽인다. 삼남지방의 연해안 뿐 아니라,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고려 전역을 초토로 만들었던 왜구들, 이들이 평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진포 해전이 승리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이 주화가 '멀리' 날아가 적을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날아간다? 멀리 날아간다는 것은 원하는 방향으로 일정한 거리를 날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주화가 스스로 멀리 날아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약통에 있다는 것을 앞에서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화약을 넣고 태우는 통을 종이로 만들었을까. 종이로 만들었다면 이것이 타버리지는 않을까요? 또 여기 보면, 약통이 달린 이 막대의 길이가 아주 '길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도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주화가 멀리 날아가려면, 무엇보다 가벼운 소재가 필요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지 가볍기 때문에 종이를 사용했을까?  종이로 약통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지, 옛날 약통을 만들었던 한지의 구조와 특징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먼저 약통은 화약을 넣어 연소 시키는 만큼,  고온고압에 견디는 강도가 강해야 한다. 한지의 강도는 어떠한지 그 구조를 전자현미경으로 정밀촬영했다. 그 결과 한지는 닥섬유들이 마치 철골과 같은 구조로 이뤄져 있었다. 이런 철골구조로 인해 한지는 질기고, 보존성도 뛰어나다. 

 

 

이렇듯 한지는 강도가 세고, 오랜 기간 보관 하기가 좋기 때문에 옛부터 지금의 수류탄이라 할수 있는 지화통의 재료로 사용됐다. 폭발물인 지화통은 순간적으로 폭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화의 약통은 지화통 처럼 순간적으로 폭발해버릴 경우, 주화가 멀리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로켓의 엔진 기능을 할 수 없다. 주화의 약통은 주화가 날아가 목표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일정 시간 그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약통이 타지 않게 하려면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국조오례서례> 병기도설의 설계도가  지시하는 방법대로 주화의 약통을 직접 만들어보았다. 중주화의 경우, 약통의 길이인 약 20센티미터에 맞춰 종이를 자른다, 다음엔 종이를 둥근 나무에 몇 겹으로 말아 감는다. 그런 다음, 종이를 감은 나무를 빼낸다. 이때 약통의 두께는 5.7밀리미터. 약통의 전체 지름과 내경의 지름을 정해진 규격대로 만든 다음, 약통의 끝은 종이로 막는다. 다음엔 약통 아래 부분에, 정해진 규격대로 정교하게 만든, 뾰족한 철침으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약통안에 화약이 일정한 밀도로 들어가도록 속이 빈 쇠막대로 화약을 다져 넣는다. 쇠막대를 빼낸 뒤, 약통의 윗면을 막고, 아래쪽에 있는 약통의 구멍에 명주로 만든 약선을 연결하면 약통은 완성된다. 그러면 실제 주화가 발사될 때, 종이로 만든 약통은 어떻게 되는지, 실험을 해봤다. 약통의 안쪽에 불탄 자국이 있을 뿐, 약통의 겉 모습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 약통 속 화약은 높은 온도. 1000도 가까운 온도. 그러나 순식간에 타기 때문에 약통안쪽만 타고 마는 상황. 전체적으로는 충분히 비행하는 동안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약통속의 화약은 얼마만에 타버리는지 시간을 재보기로 했다. 1.09초만에 불꽃이 꺼졌다.화약이 타버렸다. 이번엔 2초. 이 짧은 시간동안 화약이 연소되면서 순간적으로 고압의 추진력을 만든다. 이렇듯 처음에 화약이 연소되면서 생기는 힘이 만들어내는 관성에 의해 주화는 멀리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안정 막대 길이는 왜 이렇듯 길게 만들었을까. 주화가 멀리 날아가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주화의 전체 길이는 눈대중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국조오례서례>는, 주화의 길이 역시 자세히 지시해 두고 있다. 대나무로 만드는 이 막대의 길이는 약통 길이의 일곱 배. 막대의 꼬리 부분에는 날개를 만들어야 한다. 오례서례>는 약통을 다는 위치도 정해놓고 있다. 약통은 막대의 앞부분에 약통을 부착해야한다. 왜<국조오례서례>는 이렇듯 약통을 매단 막대의 길이, 약통의 위치, 꼬리부분의 날개까지 정확히 그 크기와 제조 방법을 지시했을까.이것은 주화가 일정 방향으로 원하는 거리만큼 날아가는 데 어떤 연관이 있을지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약통의 위치와 안정막대의 길이는 그대로 두고, 안정 막대에 날개 대신 실을 감아봤다. 주화의 비행 방향이 곧지 못하고 휘어졌다. 
다음엔 안정막대의 길이를 짧게 하고, 날개도 달지 않았다. 주화는 멀지 날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번엔 약통을 안정막대 가운데에 달아봤다. 주화는 멀리 날지 못하고, 발사한 곳 바로 위로 치솟아 올랐다. 이번에는 <국조오례서례>의 설계도대로 안정막대의 길이를 맞추고 정확한 자리에 약통과 날개를 단 주화. 주화는 멀리 200미터 넘는 거리를 안정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이 실험 결과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