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년 전의 고래사냥 - 울주 암각화의 비밀 |
30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바위 위에 남긴 흔적- 울주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는 말 그대로 바위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16개의 암각화 중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울주 암각화를 통해서 3000년 전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깊은 물에 잠긴 바위 위의 그림은 우리에게 어떠한 기록보다도 더 정확한 역사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1. 청동기인이 바위에 새긴 그림 |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 상류.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의 평평한 부분에 수 천년 전의 사람들이 새긴 그림이 있다.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그림이 물에 잠겨 1년 중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울주의 암각화. 300종류의 동물을 담고 있는 청동기인들의 그림이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우리를 찾아온다. |
2. 울주 반구대 암각화의 바다동물-고래 |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의 반구대 암각화의 오른쪽에는 바다동물이 주로 그려져 있다. 이 동물들 중 유난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 바로 고래이다.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암각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고래의 종류와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
3. 3000년 전 고래잡이가 가능했을까? |
동력선도 없고 총도 없었던 3000여년 전. 고래를 잡는 일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리고 고래잡이가 가능한 장생포는 암각화가 있는 반구대에서 26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울주 암각화 속에는 고래잡이의 과정과 고래잡이에 쓰인 도구들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고래잡이를 하던 사람들이 탔던 배들과 고래잡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의 모습까지 모두 들어있다. 바위 위에 그려진 3000년 전의 그림 속에 당시의 사회가 살아 있는 것이다. |
4. 암각화를 알면 사회가 보인다. |
바위에 그림을 새기는 방법인 면새김과 선새김방법. 울주 암각화에서 발견되는 면새김과 선새김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각기 다른 성격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차이는 사회의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다. 먼저 그려진 그림 위로 나중에 그려진 그림을 겹쳐 가다 보면, 그림 속에는 조금씩 다른 동물들과 도구들이 나타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덧 그려진 암각화가 보여주는 3000년 전의 생활상은 어떠했을까? |
5. 왜 오랜 세월 동안 암벽에 그림을 그렸나? |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은 왜 주거지와 떨어져있는 반구대의 한 벽면을 택해 그림을 그린 것일까? 기이한 바위에 깊은 물이 있는 곳에 그림을 그린 이유가 암각화에 그려진 사람들의 모습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단순한 교육용 그림이 아니라, 오래 전 그들의 신앙과 기원이 담긴 그림. 그것이 바로 암각화이다. |
문자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바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보통 고인돌 아래 묻혀있던 유물이나 주거지 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왔었는데요..
이러한 그림들은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옛 선조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그 가치가 아주 높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암각화가 총 16개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중에서도 1970년대에 가장 먼저 발견된,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실린 이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
그리고 연구가 계속되어오면서 서서히
수천년동안 침묵을 지켜고 있던 암각화의 비밀이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 청동기시절의 사람들이 남긴 그림..
그들은 왜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요?
이 그림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반구대의 암각화는 30여년 불교유적 조사차 왔던 교수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그림이 새겨진 부분은 병풍처럼 늘어서있는 절벽들 중
가장 넓고 평평한 부분인데요..
하지만 근처에 댐이 있어 물이 조금만 불어나도 그림이 물에 잠기게 되어
일년 중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수천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림.
다행히 위로 지붕 역할을 암벽에 가려져 있어
그림은 눈이나 비를 직접 맞지 않는 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이것은 희미한 그림을 바다동물은 파란색,
육상동물은 빨간색으로 나누어 CG로 덧그린 그림입니다.
암각화의 탁본사진과 전체를 찍은 사진을 참고한 것으로
그림 하나하나가 굉장히 자세히 표현되어있는데요.
정확하게 식별 가능한 것만 220~230 종류의 동식들이
넓이 1m, 높이 3m 정도에 크기의 돌 위에 그려져 있는데요.
이것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대규모라고요.
작은 물고기부터 고래, 상어의 모습도 보입니다.
마치 실제 헤엄을 치듯 요동치고 있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입에 물고기를 물고 가는 물개의 모습도 보이는데요.
육지 동물에는 표범, 떼지어가는 사슴,
초식동물부터 맹수까지 다양한 암각화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분포를 둘러봐도 한가지 규칙이 보이는데요.
그림의 왼쪽, 즉 동해안 쪽으로 는 물고기들이, 오른쪽 내륙지방에는 육지동물이 주로 새겨져 있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새겨진 동물이 바로, 고래입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던
까맣게 살짝 확대된 저 그림의 주인공 역시 고래입니다.
그런데 모양이 왜 이러냐고요?
바로 누운 모습을 그대로 그린 것!!
그렇다면 저 고래는 왜 육상동물들과 사이좋게
내륙지방을 나타내는 그림의 오른쪽에 누워있는 걸까요?
또 암각화에 그려진 동물의 절반이상이 고래입니다.
그리고 고래의 다양한 습성과 종류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죠.
이렇게 고래의 특징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릴 수 없는 그림들이 대부분.
동력선도 총도 없던 3000년 전에
이들은 고개를 이렇게 잘알고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그 비밀을 풀어주는 그림입니다.
언뜻 보기엔 뭔가의 뼈같아 보이는 저 그림은
사실 배가 고래를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배 위엔 20여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고,
고래가 동그란 그림과 함께 배에 연결되어 있죠.
동그란 것은 에스키모인들이
역시 고래사냥에서 쓰고 있는 것과 모습이 비슷한데요.
저렇게 작살을 맞은 고래가 주는 저항을 줄이기 위해 쓰는 ‘무고’라는 것으로
또 고래가 빨리 지치고 또 고래가 죽더라도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무려 3000년 전의 고래를 잡는 모습이 섬세하게 표현된 암각화는
세계 포경역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3000여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풍요와 안전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국가의 소중한 자산입니다만 놀라운 소식이 하나. ㅠㅠ
암각화가 훼손되고 있다며 댐수위를 낮추거나
암각화 전면에 차수벽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울산시와 문화재청에서 안전진단을 실시했다고 하는데요.
이 과정에서 풍화상태를 파악한다며 암각화 표면의 주변에서
쇠망치로 암석을 깨트려 주먹만한 시료를 6곡에서 채취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수곤 교수의 '반구대에서 불타는 숭례문을 본다'라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그야말로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알수 없는 상황.
앞으로는 좀더 주의깊고 전문적인 관리가 시급하겠습니다.
바다야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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