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
경북 경산시 임당지역에서 발굴된 1500년 전의 고분들. 이 발굴은 16년간 계속되었고, 대형고분에서 작은 옹관묘까지 모두 1700여 기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유물들을 모두 걷어냈을 때 무덤의 가장 낮은 자리에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된 인골들이 있었다. |
1. 무엇이 순장묘인가? |
경북 경산시 일대에 크고 작은 무덤들이 밀집해 있다. 무덤에서는 고대유물과 함께 인골들이 나왔다. 무덤은 주인공이 묻히는 주곽과 순장자들이 묻히는 부곽으로 구분되어 이중구도를 띄고 있었다. 순장은 한 무덤 안에 신분의 차이가 분명한 사람들이 한번에 묻혀 있어야만 한다. 봉분의 판촉상태로 보아 모두 한꺼번에 묻힌 것이 분명한 이 무덤은 많게는 서른 여섯 명까지 순장되기도 했다. |
2. 어떻게 죽였나? |
순장자의 두개골을 조사해 본 결과 둔한 흉기에 맞아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순장자의 죽음은 다양했는데 시체에 염까지 해서 가지런히 놓여진 순장자, 두개골만 묻힌 순장자, 어지럽게 뼈가 흩어진 순장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생매장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
3. 어떤 사람들이 순장됐나? |
한 무덤에서 나온 인골들을 정밀 분석한 결과 순장자는 어린 여자아이와 중년의 남자들이었다. 또 화려한 여성용 장신구에서 그 신분을 추리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시녀나 시동이었을 것이다. 즉 당시 세력을 떨치던 50대 남자가 사망하자 가까이서 모시던 열세 살 된 어린 시녀가 함께 묻히고 각종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부곽에는 평소 이 물건들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함께 순장됐던 것이다. |
4. 사후 세계관 |
무덤 속에는 또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먹을거리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곡식, 동물, 심지어 생선, 상어 뼈까지 출토되었는데, 이는 계세사상 때문이었다. 계세사상은 현세의 생활이 죽어 무덤 속에서도 계속된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순장자들까지 반항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즉 죽은 주인을 저 세상에서도 모셔야 한다는 숙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5. 순장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순장은 지배자 본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임당 지역의 고분들 중에서 조그만 아이의 묘가 나왔다. 그 안에는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법한 장난감들과 20대 여자의 유골이 나왔다. 아마도 지배자의 아들이 죽자 유모를 함께 순장 시켰을 것이다. |
6. 순장의 폐지, 그 이후 |
순장은 6세기 지증왕에 들어서 폐지된다. 이 시기는 농업을 국가경제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범 국가적 경제개혁 조치가 일어나던 때다. 노동력 확보라는 중요한 당면 과제 앞에서 인적자원이 순장으로 낭비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그러나 그 관습을 쉽게 버리지 못했던 지 신라 사람들은 사람 대신 흙으로 빚은 토용을 순장하였다. |
<< 순장 >>
사후 세계를 믿었으며 사후 세계도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저승에서도 이승과 마찬가지로 재물이 통용되고 부릴 노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장례때 저승에 가져가 사용할 여러가지 재물을 '부장품'으로서 사자와 함께 묻어주면 이를 사자가 저승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에 지금과 같은 인권 의식이 없던 시대엔 노예도 '재물'의 일부였습니다. 부장품의 하나로서 노예들을 함께 묻은겁니다.
저승길에 그리고 저승에서 그들의 '주인'을 생전에서처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풍습은 점차 인권 의식이 싹트고 노동력의 필요성 등을 고려하게 되어 진짜 사람을 묻는 대신 '토우'라는 진짜 사람을 대신한 인형을 묻어주는 걸로 변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진 시황제의 병마용들도 이런 '토우'의 일종입니다.
<< 역사 스페셜 7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중에서 >>
"만사를 처리하던 옛 영웅도 죽어서는 한 줌 흙이 되어
나무꾼과 목동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들이 굴을 팔 것이다.
그러니 헛되이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역사의 비방거리가 될 것이요,
사람을 수고롭게 하더라도 내 혼백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장례 절차는 철저히 검소하게 해야 할 것이다."
순장이 폐지(지증왕, 500년)되고 180년이 지난 681년, 문무왕이 죽을 때
남긴 말이다. 왕의 장례는 점점 간소해졌고 살아 있는 사람을 순장하는
잔인한 풍습은 역사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순장이 폐지된 사회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더 성숙하고 다양화된 사회로 발전한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개개의 인간이 존중될 때 비로소 역사는 진일보하며 발전한다는 사실을,
순장이라는 비인간적인 풍습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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