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21 완도 바다 속 3만 청자의 비밀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8:45

완도 바다 속 3만 청자의 비밀 
잔잔하게 흐르는 서남해안의 완도 앞바다, 그 바닷속 깊은 곳에 고려의 보물이 있었다. 수만 점의 청자가 실린 한 척의 침몰선, 이제 그 침몰선이 1000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 년을 침묵했던 배가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 고려의 모습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1. 잠들어 있던 수 만점의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다
전라남도 완도의 어두지. 조개 잡이를 하던 한 어부의 그물에 네 점의 청자가 걸려 올라왔다. 감정결과 청자는 고려시대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작업에 들어갔고, 바다 밑에서 영원히 잠들 뻔했던 고려의 유물 수만 점이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2.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고려의 배
완도 해저유물선 발굴작업은 3만여 점의 유물을 인양한 것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런데 뜻밖에 제법 완전한 형태의 나무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배의 발견은 사학계를 흥분 시킨 사건이었다. 고려의 해상활동이 활발했다고 전해지긴 하지만 실제 배는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 침몰선은 전형적인 우리의 한선이다
12세기의 고려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비록 배 바닥과 옆면만이 남아있었지만, 배에는 배의 원형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숨어있었다. 완도 해저 유물선은 그 동안 토기와 문헌으로만 볼 수 있었던 우리 배의 형태나 제작기법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4. 청자로 만든 장고
배 안에 실린 유물들 중에는 그릇, 대접, 항아리 등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유물들 중에서 위와 아래가 트여있어서 병이나 항아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독특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이화여대박물관에도 이와 같은 모양의 청자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청자로 된 장고이다. 그렇다면 청자장고는 어떠한 소리를 낼까. 그 소리는 악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소리일까.
5. 완도 앞 바다에서 발견된 청자의 실체
우리는 청자라고 하면 특유의 푸른빛 비색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완도 앞 바다의 청자는 비색보다는 녹갈색에 가까운 빛을 띠고 있다. 12세기 고려청자의 절정기에 왜 녹갈색에 가까운 청자가 생산된 것일까? 완도바다 속의 녹갈색 청자의 실체가 밝혀진다.
6. 침몰된 배는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완도해저유물선 안에서 발견된 삼만 여 점의 녹청자는 어디서 어디로 옮겨가고 있다가 침몰되었을까? 3만점에 달하는 녹청자의 행선지를 밝히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녹청자의 생산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완도 앞 바다에서 녹청자가 인양되기 불과 두 달 전에 해남에서 대규모 녹청자 가마터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7. 30,000여 점의 녹청자는 어디로 실려가고 있었나
3만여 점의 녹청자를 실은 배의 구조를 살펴보면, 유물선은 연안을 따라 운항하던 연안 운반선일 가능성이 높다. 녹청자를 가득 실은 배는 연안을 따라 운항하며 무엇을 하려했던 것일까? 

 

 

완도 바다 속, 3만 청자의 비밀

 

앞바다 유물선에서 3만여점의 청자가 발굴됬다. 조개잡이 하던 어민의 그물에 청자가 걸려나와서 우연적으로 발굴되었다. 유물의 대부분은 그릇이나 사발같은 실생활 용품이 었다.

12c전반, 고려중반의 것으로 3만여점이 발견되었고 도자기외에 청동제그릇이나 수저도

있었다. 바다 밑에 뻘을 파내자 파손된 배의 흔적이 드러났다.

이 배는 3만여점의 유물을 심고 가다가 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것이다.

이 배의 발견으로 실제 고려의 배를 복원할수있었다. 완도 해저 유물선은

돛이 1개 달린 전통적인 한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한선은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형 선박이다. 또 배를 지을때 쇠못이 아닌 나무못을 쓰고 배가 벌어지지 않도록 가룡목을 쓴다는

특징이 있다.

 

 

완도 유물선에서 발견된 유물 중 우리의 시선을 끄는 유물이 있다. 그것은 장고의 기둥인데

지금 널리쓰이는 오동나무가 아닌 청자로 만든것이다.

또 완도유물선의 청자는 청자 특유의 비색을 띄지 않고 청자표면이 거친 질이 안좋은것들이다.

녹청자라 분류되는 것들이다. 고려 청자의 최절정기인 12c에 이런 질이 안좋은 녹청자가

대량으로 생산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일반대중들이 사용하던 실생활용품인 것이다

그릇은 어디로 가고 있던걸까? 그릇의 밑바닥엔 여러 기호들이 적혀있는데

여러 공방에서 생산된것을 알수있다. 완도에서 가까운 해남에선 대규모 가마터가

발견됬는데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져있다. 여기서 발견된 청자 파편들은 완도선의

파편과 연대와 성분이 같은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수도개경을 오갔던 조운선은 돛이 2개인데 완도선은 돛이 1개이다.

이것으로 완도선은 가까운 연안을 오갔던 운반선으로 보인다. 송광사에선 부엌자리에서

녹청자가 다량 발견됬다. 또 사찰외에 고려시대 고분에서 발견된다. 녹청자는

고려시대 중산층이 사용한것이다.  완도선은 해남을 출발해 완도로 가던 중 암초에 부딫혀

침몰한것으로 보인다.

1000년동안 잠 들고 있었던 고려시대의 녹청자. 고려시대의 청자는 비색의 청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한 귀족의 전유물도 아니었다. 청자는

다양한 계층이 포용했던 고려의 자기였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이 사용했기 때문에

고려의 청자가 세계적인 명품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