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28 청동 거울의 비밀 - 일본'천황'은 백제인인가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8:48

청동 거울의 비밀 - 일본'천황'은 백제인인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인 동경. 고대 사회에서 왕은 태양 같은 존재였고, 태양의 의미하는 동경은 왕의 상징물로 쓰였다. 그런데 무령왕릉의 동경과 유사한 동경이 일본천황의 무덤으로 알려진 인덕릉에서도 출토되었다. 과연 이 두 동경은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인가 
1. 동경의 출토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세 개의 동경이 발견되었다. 동경이 발견되었을 때 동경 밑에서는 금으로 만든 장식물도 발견되었다. 그것은 왕의 뒷머리를 장식하는 금제 뒤꽂이였다. 이는 동경이 발견된 위치가 바로 왕의 머리 부분이었음을 말해준다.
2. 왕권의 상징, 동경
왕이 무덤에 묻힐 당시에 왕의 얼굴을 동경으로 가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 사람이상으로 죽은 사람을 신성시했던 고대에서 일반인도 아니고, 하늘과도 같은 왕의 얼굴을 가렸다면 그 만큼 동경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동경을 무엇으로 생각했길래 왕의 얼굴을 덮었던 것일까. 동경의 상징성은 빛을 반사하는데 뛰어난 청동의 성질에 있었다.
3. 동경의 문양과 무늬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동경의 뒷면은 아주 복잡한 문양과 무늬들이 새겨져 있다. 중앙에는 공을 반으로 자른 듯한 반구체의 고리가 붙어 있으며, 주변에는 아홉개의 돌기가 고리를 감싸고 있고, 그 바깥에는 두 개의 원이 둘러져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경이 출토될 당시 부식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문양과 글씨를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동경을 보관중인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 KBS특수영상자료실에서 동경에서 부식된 내용들을 자세히 복원해 보았다.
4. 일본 인덕릉에서 출토된 동경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는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큰 세계 최대규모의 고분이 있다. 바로 일본 제16대 천황의 무덤인 인덕릉이다. 이 인덕릉에서 동경이 하나 출토되었다. 그런데 무령왕릉과 인덕릉, 두 왕릉에서 출토된 동경은 형제처럼 닮아있었다. 동경은 당시의 시대상과 왕의 통치이념 등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의 왕릉에서 형태와 사상이 동일한 동경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5. 일본의 오사카
문제는 백제에서 만든 것이 일본으로 건너갔느냐, 아니면 일본의 동경이 백제로 넘어갔느냐이다. 취재진은 인덕릉이 있는 일본의 오사카로 출발했다. 오사카는 일본의 고대국가가 출발했던 곳이다. 그런데 인덕릉을 비롯한 일본 천황릉 주변에 백제계 세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사카와 인접한 아스카 지역은 온통 백제인들이 세운 유적과 무덤들로 가득 차 있었다.
6. 동경의 비밀
인덕릉 동경에는 주목할 만한 문양이 하나 있다. 바로 태양의 중심에 산다는 세발 달린 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천황들은 새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백제와 일본 천황과의 관련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유적이 남아있었다. 

 

청동거울의 비밀, 일본 천황은 백제인인가?

 

 

한.일 양국의 학계를 흥분시킨 무령왕릉의 발굴,

그 중 청동거울인 동경이 이목을 끈다. 동경은 왕의 머리부분에 위치해있었고 동경밑엔

금제 뒷꽂이가 발견되었다. 동경윗부분엔 가죽끈도 남아 있었다. 동경은 왕의 얼굴을

덮고있었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을 첨가하여 만든다.

고분에서 출토된 3점의

동경들은 하나같이 거울 중간에 반원모양의 튀어나온 부분이있다. 또 가죽끈으로 봐서

목이나 가슴부분에 찬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태양을 상징하는것으로 왕의 권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고대사람들에게 태양은 절대권력을 의미했다. 동경은

청동기 시대엔 마귀를 쫒는 주술적인 역활을 하였고 왕조시대엔 왕의 권위를

상징했다. 거울 뒷면엔 여러가지 글자와 그림들이 새겨져있는데 자손을 널리 번성하라는

끗의 '의자손'이란 글자와 백호등의 문양들이 새겨져있다.

 

일본천황의 묘에서도 동경이 발견되었다.

세계최대규모의 인덕릉에서 발견된것이다. 인덕릉 동경과 무령왕동경은 똑같은 양식과 모양이다.

사신신앙 역시 두 거울이 동일하다는것을 증명해준다. 백제와 일본은 긴밀한 관계였다.

인덕릉 주변엔 지금도 백제성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있다. 또한 천황릉 주변엔 백제유물과

문화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백제계세력이 이곳에 정착했음을 알수있다. 백제에서

건너온 여성이 이곳에서 백제양식의 목곽분에 안치된것으로 보인다. 일본최초의 신사인

아스카사엔 백제에서 건너온 귀인을 모시고 있다. 이 여인은 일본천황의 권위를 능가했다고 한다.

 

아스카지역은 백제인들이 세운 유적과 무덤들로 가득하다. 오사카와 나라는 백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인덕릉 동경엔 삼족오가 새겨져있다.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세발 달린 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금제뒷꽃이나 금동제신발, 환두대도등에서 삼족오가 확인되었다.

백제와 고대일본, 백제이주민과 천황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천황은 백제인들이 사용했던 왜라는 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본천황가가 백제계세력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