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성립되기 이전, 구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청동기 시대이다. 이 아득한 옛날의 유적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바로 진주 남강 유적이다. 그런데 이 남강 유적지에서 발견된 2500년 전의 인골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없었다. 머리 없는 무덤의 주인은 왜 죽었으며, 어떤 이유로 머리가 없이 몸만 묻힌 것일까. |
1. 머리 없는 무덤 |
남강댐 수몰 예정지인 진주 남강 상류. 댐 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파 내려가자 2500 년 전의 유적이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110만여 평에 이르는 유적지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무덤이 하나 발견되었다. 무덤 안에는 2500년의 세월을 견뎌온 인골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발견된 인골에는 머리부분만이 없었다. |
2. 화살을 맞고 죽은 무덤주인 |
머리가 없는 무덤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의 또 다른 무덤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이 무덤에서는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미 인골은 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덤은 무덤 주인이 왜 죽었는지 그 사연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화살촉으로 추정되는 돌멩이가 나온 것이다. |
3. 전쟁의 흔적 |
발굴이 진행되면서 무기에 맞아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무덤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도대체 2500년 전 진주 남강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런데 마을에서 긴 도랑이 하나 발견되었다. 폭이 약 2미터. 자연적으로 생긴 도랑일까. |
4. 전쟁의 원인 |
왜 전쟁이 일어났을까.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넓은 영토를 확보하려는 영토 싸움이었을까. 애써 담장을 높이 쌓고, 울타리를 치는 사람은 분명히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환호 목책을 세운 진주 남강 마을에도 분명히 외부의 다른 집단이 탐낼만한 것이 있었다. 남강유적 주거지 발굴지로부터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특이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
5. 무기의 발달 |
무덤에서 나온 부러진 화살촉을 통해서 누가 어떤 화살에 맞았는지, 당시 무기수준은 어떠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무덤의 주인이 맞았던 화살촉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무덤에서 나온 화살촉은 화살촉 끝이 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롭다. |
6. 송국리 전투 |
전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남강 마을처럼 목책이 있고, 목책 안 마을에서 쌀과 같은 곡식류가 대량 발견되었던 부여 송국리 유적이다. 부여 송국리와 진주 남강유적은 같은 시기로 알려져 있다.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송국의 전투는 어떤 상대가 서로 만나 싸운 것일까. |
2500년전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다.
기원전 4~5c의 청동기 유적지인 진주남강 유적지엔 덮개돌을 얹은 석관묘가
발견되었다. 그 안엔 인골이 비교적 잘 남아있었는데 머리가 없었다. 왜 두개골이 없는걸까?
가장 늦게 부식되는 치아도 남아있지 않았고 무덤의 크기도 머리가 놓일 여유부분이 없었다.
무덤의 주인은 머리없이 몸만 매장된것이다.
또 남강 유적지에 다른 무덤에선 화살촉도 발견되었는데 화살촉의 끝부분만 남아있었다.
이것은 부장품이 아니다. 확인결과 화살촉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 부러진것으로 나타났다.
무덤주인이 화살에 맞아 죽은것이다. 4개의 부러진 화살촉은 무덤 곳곳에 흩어져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기에 의해 피살된 무덤이 여러군데 있다. 이곳엔 무슨일이 있었던것일까?
남강유적지엔 땅을 파서 도랑을 만든 흔적이 있다. 외부의 적이 침입했을때 발이 끼도록
깊고 좁게 판 흔적이다. 일종의 방어시설물인 '환호'이다. 해자와 비슷한 역활을 하는것으로
보인다. 환호뿐 아니라 나무울타리도 둘렀는데 이것을 목책이라고 한다. 목책과 환호를
설치해서 일종의 성과 같은 역활을 했다. 또 마을 중심에도 두줄의 환호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방어시설은 이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외부의 다른집단은
무엇때문에 이 지역을 공격했을까. 남강유적엔 탄화된 곡물이 대량 발견되었고 국내최초로
청동기 시대의 밭 흔적 유적이 발견되었다. 넓은 곡창지대가 있었던 걸로 봐서
거대한 규모의 마을이 었던 것이다. 이곳의 넓은 농경지대를 획득하기 위해 침범한건아닐까?
이곳엔 옥을 가공하거나 화살촉을 만드는 공방도 있었다. 이것은 당시에 직업이 세분화되었다는
증거다. 직업에 따라 분업화가 된것이다. 이 시대는 계급사회였던 것이다.
무덤에서 나온 부러진 화살촉은 가장 발달한 능형 화살촉으로 밝혀졌다.
능형 화살촉은 이전의 화살촉보다 규모나 무게가 크기때문에 파괴력이 더 강했다.
이들의 일반적인 무기는 화살과 돌도끼였을것이다.
부여 송국리 유적엔 많은 청동기 유적이 발견됬는데 남강유적지처럼 환호나 목책같은
방어시설이있다. 전쟁이 일어났다는 증거다. 그런데 송국리 유적 마을 70% 이상은
불에의해 소실된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전쟁에 의한 화재로 보인다.
이 전쟁후,
네모난 집터가 사라지고 원형집터가 나타나는데 외부에 거주했던 원형집터의 세력이
네모난 집터의 세력을 몰아내고 그 곳을 차지한것으로 보인다.
부여 송국리 유적외 한반도 남부의 여러 청동기 유적에서 목책과 환호등의 방어시설이
발견된다. 2500년전 이 땅의 한반도는 전쟁중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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