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100선

37 허준은 과연 스승을 해부했을까?

사랑의고향길 2013. 9. 28. 18:59

허준은 과연 스승을 해부했을까?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한 스승은 그의 제자에게 자신의 몸을 내줬다. 제자가 몸 안의 오장육부를 살피고 해부술을 익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눈물을 머금은 제자의 해부는 시작되고 …. 그리고 그 제자는 조선 최고의 명의가 된다. 바로 명의 허준과 그 스승에 관한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역사 속의 허준은 어떤 사람일까. 허준은 정말로 스승의 몸을 해부했을까. 전설 속의 허준이 아닌 역사 속의 실제 인물 허준을 만난다. 
1. 동양 3국의 베스트셀러 - 동의보감
동의보감은 당시 동양의학 전체를 간편하게 종합해 정리한 의학 백과사전이다. 무엇보다도 동양의학을 주도하고 있던 중국을 훨씬 능가하는 획기적인 결과물이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동의보감은 백성을 보호해주는 신선의 경전이요, 의사들의 비법을 담은 문서’라고 극찬을 했다. 이 동의보감은 편찬당시부터 중국과 일본에서 앞 다투어 발행되면서 세계성을 얻었다.
2. 허준의 인체지식
동의보감의 첫 페이지에는 인체해부도로 인체의 장기와 각각의 특징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동의보감의 장기 묘사는 거의 정확하여 해부를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 매달린 박같이 생겼다고 묘사한 쓸개에 대한 관찰은 현대의학에 비추어봐도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다. 또 동의보감엔 상당한 수준의 외과적인 치료술도 담겨있다.
3. 허준은 스승을 해부했을까?
허준의 뒤에는 자신의 몸을 해부하도록 내준 한 스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교적 소양이 높았던 허준이 당시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이나 정서에 상관없이 스승의 몸을 해부할 수 있었을까?
4. 유의태는 누구인가?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허준의 스승은 경상도 산청의 유의태이다. 유의태의 흔적을 쫓던 취재진은 같은 지방에서 비슷한 이름을 가진 명의 유이태를 찾을 수 있었다. 조정의 부름을 거부하며 백성들을 진료한 유이태는 중국천자의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을 만들어낸 대단한 의사였다. 그럼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가 바로 이 유이태를 말하는 것일까?
5. 허준은 누구인가?
젊은 시절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한 허준은 서울의 양반들 사이에서도 의술이 뛰어나다는 칭송이 자자했었다. 이후 허준은 내의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의술이 점점 깊어지며 서서히 전면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허준은 의서를 편찬한 후 동의보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중국의 <북의>나 <남의>에 버금가는 결과물이라는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6. 민중의 의사 허준
허준은 결코 소외된 일반 민중을 잊지 않았다. 동의보감의 탕액편을 보면 650여 가지의 약재 이름이 한글로 나란히 적혀있다. 또 동의보감에서 처방하는 주요약재의 90%가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약재들이었다. 오로지 의술의 한길, 그 곧은 삶을 통해 허준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민중에 대한 사랑이었다. 

 

 

 

 

허준은 과연 스승을 해부했을까?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래 읽히고 있는 동의보감을 만든 허준 . 동의보감은 중국에서

20여차례나 간행될정도로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동양3국의

한방학의 교과서나 다름없다. 총25권의 동의보감은 일목요연하게 구성되어있어 실용성과

편리함이 뛰어나다. 오늘날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날까지 동의보감은 한의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의학을 주도했던 중국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동의보감 첫페이지엔 해부도가 있다. 또 책엔 우리 몸의 장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부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수없는 내용들이다. 동의보감의 장기그림, 숫자 , 모양새 , 위치는

현재 인체도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동의보감엔 외과에 대한 지식도 기록되어있다.

초오산으로 마취재를 만들어 마취를 시키고 실로 봉합하는것이 오늘날 외과수술과 별 다르지 않다.

허준에 대한 설화중 허준이 자신의 스승을 해부함으로써 자신의 의학을 완성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당시 유교적 사회였던 조선에서 그것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해부학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익의 성호사설에 보인다. 그러나 해부는 동양의 사상과는 전혀 맞지 않다.

허준의 해부는 오늘날 서양의 해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허준은 해부를 한것일까?

그러나 당시 조선의 유교적사상을 종합해보면 그건 불가능해보인다. 허준이 스승을 해부했다는것은

후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과장된 이야기이다.

밀양 얼음골엔 스승 유의태가 허준에데 몸을 내줬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는 누구일까? 그러나 유의태는 어디에서도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명의 유이태가  있었지만 허준과 동시대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는 전설이나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왜 허준에 대한 기록은 불확실한것이 많을까? 91년도에 허준의 묘비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의 출생이나 죽음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정1품 벼슬도 한 허준은 서자였다.

당시 적서의 차별이 심한 당시 사회에서 당연한지도 모른다. 허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유희춘의 미암일기에서 발견된다.

 

 

 

 미암일기엔 유희춘과 허준이 친했음과 유희춘의 천거에 의해

내의원이 된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허준은 내의원이 되면서 양예수를 만나게 된다.

허준의 실질적 스승인셈이다.

허준이 광해군의 천연두를 치료하자 선조는 정1품의 벼슬을 하사한다. 그러나 중인신분인

허준에게 평탄한 벼슬생활은 허락되지 않았다.

동의보감의 간행은 의학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동의보감은 중국식 처방도 적혀있으나

우리 향토와 민족의 체질에 맞는 검증된 처방만 기록하고 있다.

 

 

 

 또 동의보감에 나오는

약재의 90%가 모두 우리땅에서 쉽게 구할수있는 향초들이다. 당시 고가의 중국재 당약은

백성들이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돈이 없어 약재를 구하지 못하는 일반 서민들에게

동의보감은 희망과도 같은것이었다. 동의보감은 백성들을 사랑하는 정신도 들어있는것이다.

허준은 일반백성들도 쉽게 의서를 접할수있게 한글로 의서를 많이 번역했다.

이런 허준의 사상은 무엇보다 민중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오늘날 높이 평가되는것이다 .